"김재규 지시로 김형욱 권총살해"

1979년 10월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에 의해 납치, 살해됐으며 파리 근교에 유기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26일 이 같은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 지시를 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김재규 당시 부장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지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재규 부장은 1979년 9월말 이전 중정의 프랑스 거점장이던 이상열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이 공사가 적임자로 선정한 중정 연수생 신현진(가명)이 살인청부를 받은 제3국인 2명과 함께 10월 7일 승용차로 납치, 파리 근교로 끌고가 제3국인이 권총으로 살해했다.

이들은 당시 김 전 부장의 시신을 낙옆으로 덮어놓은 채 현장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파악됐으나 신현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체유기 장소를 진술하지 않아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진실위는 "이상열 공사가 김 전 부장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전주를 소개시켜주겠다며 10월 7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뒤 신현진이 제3국인 2명과 함께 이 공사의 차량을 이용해 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제3국인 2명은 김 전 부장을 살해한 뒤 신현진과 함께 사건에 가담한 연수생인 이만수(가명)로부터 미화 10만달러가 든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공사는 관저에서 신현진으로부터 결과를 보고받고 김 전 부장의 여권과 지갑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소지품은 철저히 인멸한 뒤 귀국할 것을 지시했고, 신현진은 귀국 후인 10월 13일께 김재규 부장에게 결과를 보고했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김재규 부장은 당시 신현진의 보고를 받고 격려한 뒤 그를 중정부장 직속기관인 정책연구실로 발령하고 300만 원과 20만 원이 든 봉투 두개씩을 지급, 이만수와 나눠갖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위는 "이상열 당시 공사에 대해 3차례 면담조사를 했으나 사건 개입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형욱 전 중정부장을 파리로 유인하는 과정에 관련된 것으로 의혹이 제기됐던 연예인 최모, 정모씨 등 여성 3명을 면담한 결과, 개입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실위는 덧붙였다.

진실위는 이번 조사에서 국정원 존안자료 1만900여쪽과 공판기록 및 군 수사기록, 대통령 의전일지 등 9천500여쪽 등에 대한 자료 검토와 사건 당시 중정 주불 거점 요원 및 연수생 8명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해 관련 인물 33명에 대한 면담을 실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