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下山길 복병

입력 2005-05-26 11:49:01

"판을 더 키울 게 아니라 가벼운 몸으로 내려와야"

개혁을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정부도 앞으로 석달만 지나면 서서히 하산(下山) 길로 접어든다. 통상 건강한 사람이 산을 오를 땐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할 따름이고 잠깐 쉬었다 오르면 정상 정복의 쾌감까지 배가(倍加)되면서 피로는 간데 없어진다. 그 맛에 취하면 이른바 '등산 중독증후군'에 빠져들기도 한다. 문제는 하산길이다. 정상정복의 쾌감에 젖어 내리막길이 수월하다고 해서 무리하다보면 특히 관절에 이상이 생기기 십상이다.

자칫 잘못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골절상을 입기도 하고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참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중년 이상의 등산애호가들에게 특히 하산길을 조심하라고 등산전문가나 전문의들은 당부한다.

역대 정권의 비리가 통상 집권 중반 이후에 터진 전례에서 참여정부도 예외가 아닐성 싶은 징후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유전(油田)의혹' 사건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행담도 개발 의혹'이 터지면서 청와대나 여권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재'보선에서 야당에 참패한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돌출된 것이라 여권은 무척 당혹해 하고 있다. 지금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의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노조의 생명인 도덕성에 치명상이 되고 있다. 노조 지휘부가 부패하면 그 노조의 위력은커녕 존립 근거마저 흔들리기 마련이다. 참여정부는 더더욱 그렇다. 정부 수립 반세기를 넘기면서 과거의 정권들이 키워놓은 온갖 부패나 부조리가 서서히 불거지면서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국정 개혁'의 시점에 출범한 게 참여정부이다. 게다가 참여정부나 여권의 핵심 세력들이 대부분 과거 독재정권의 피해자들이기에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어느 집권층보다 절감할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은 더욱 강도 높고 야심찬 역동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개혁의 주체가 지녀야 할 도덕성이다. 개혁에 반드시 수반될 기득권층의 반발을 잠재우려면 시쳇말로 개혁의 주체들은 이슬을 삼키면서 배고픔을 감수할 만큼 엄격한 도덕성을 갖출 때 비로소 성과를 낼 수도 있고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게 이른바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런데 출범 초기부터 '대선(大選)'경선(競選)자금'문제에 부닥치면서 '누가 누굴 개혁한단 말인가'라는 저항의 빌미를 제공해 버렸다. 게다가 '외환위기'이후의 침체된 경제탓에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는 국민의 공감대를 외면해 버린 것도 실책이었다. 직장을 잃고 생존에 허덕이는 서민층에게 '빵'이외엔 아무것도 먹혀들지 않을 때 '그래도 개혁'이란 기치는 '좋아하네'라는 조소를 낳고 말았다. 이 경제 회생 문제는 아직도 유효한 국정의 최우선 과제이다. 거기다 노조의 '분배 우선론'에 손을 드니까 이번엔 재계(財界)가 주춤해 버렸다.

5년만 기다리자는 각오로 수출해 모은 걸 현금으로 이리 저리 묻어 놓고 설비 투자를 않는데 경제가 일어 날리 없다. 뒤늦게 경제 회생으로 대통령이 돌아서자 여론이 잠시 돌아섰지만 이번엔 충청권 수도 이전 문제가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충청권 이외의 지역에서 좋아할 리가 없고 특히 수도권 여론이 들끊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아닌가.

게다가 공공기관 이전 물의에 이어 SJ프로젝트라는 특정 지역 개발 계획이 극비리에 추진된 배경이 차기 대선 내지 내년 지자체 선거용이라는 비난 여론에 직면한 마당에 정권의 실세들이 개입된 의혹 사건까지 겹친 형국이다. 개혁은커녕 터진 문제 봉합에 급급해야 할 판국이다. 집권 2년을 넘기면서 또다른 문제가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서 터져나올지 모를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던진 개혁 화두나 방향은 옳다. 이는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외면할 수 없는 국정 지표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현실'을 외면한 '이상'에 치우친 게 무리수였다. 더 이상 도덕성에 흠집 내는 문제가 터지면 권력 누수기와 겹쳐 감당해내기 어렵다.

판을 더 키울 게 아니라 후회하지 않을 '국정 마무리'에 매진할 계제이다. 무리한 건 버려야 하고 후대의 평가를 염두에 둔 '국정'이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건 예컨대 측근들의 잘못을 스스로 찾아내 솔직하게 고백하겠다는 '자세'가 그나마 '참여정부'의 개혁 성향에 걸맞는다는 사실이다. 그 실천 의지는 하산(下山)길엔 '몸과 마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는 '등산 교훈'에서 찾아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朴昌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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