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촛불만감

입력 2005-05-26 08:49:52

촛불을 보면 어릴 때 옥포 기세골 외갓집에 밤늦게 갔을 때 연한 감색으로 물들인 창호지 문에 바느질하시던 외할머니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다정한 추억이 생각난다.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촛불 켜놓고 로망스곡을 듣게 되면 대학시절 가슴을 출렁이게 하던 동무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임휴사 토굴에서 고시공부 중이던 친구를 찾아가려면 방과 후 버스를 타고 서부정류장을 지나 낙동서원에서 내려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지금은 없어진 그 토굴에서 촛불 켜놓고 책을 보던 친구는 나를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나에게 촛불의 이미지는 삶의 의미와 같다.

어머니가 자식 잘 되라고 지극정성으로 빌면서 산신각 앞에 켜놓은 촛불은 자기희생으로, 부처님 오신 날 켜놓은 연등 속 촛불은 자기를 밝히고 법을 밝히는 지혜의 촛불로, 성탄절 성당과 교회의 촛불은 사랑과 평화의 촛불로 느껴진다.

그런데 정감어린 사랑의 촛불은 언제부터인가 시위용 촛불로 등장했다.

촛불을 켜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다짐을 하던 청소년들이 며칠 전 촛불시위를 하자면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도 있다.

2008년 입시부터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고 내신이 강화되는 새 대입제도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체육점수를 잘 받기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장소를 찾아다니거나, 체육과외라도 받아야 할 정도로 만능 수험생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는 학생과 학부모들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고, 권력자들이 정권재창출을 위한 불순한 목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까지 들 정도다.

몇해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촛불 시위를 지켜보면서 형편이 어려워도 쓴소리하는 어른들이 있고, 따뜻한 정이 있던 시절의 촛불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위 촛불에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염원과 자기 목소리가 담겨 있겠지만 화합과 정감이 살아있는 촛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대구시의원 손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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