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비싸야 잘 팔린다고? 천만에!

입력 2005-05-21 13:02:42

저가 화장품 인기

'화장품이 싸졌다.

'

몇 만 원은 줘야 살 수 있던 립스틱을 1천 원이면 살 수 있다.

허브를 첨가한 기능성 고급 아이크림도 8천800원이다.

값 싸고 품질 좋은 국산 화장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서울 명동,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 자리잡은 '미샤'(MISSHA)나 '더페이스샵'(THE FACESHOP) 등의 저가 화장품 전문숍은 젊은 여성고객으로 붐비고 있다.

이들 두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천억 원이 넘었다.

선두업체인 미샤를 운영하고 있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1천11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더페이스샵도 1천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올해 예상 시장 규모는 3천억~4천억 원 안팎. 급성장 추세다.

◇저가 화장품의 탄생

화장품도 비쌀수록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1986년 국내 화장품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유명 외제 화장품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태평양을 비롯한 국내 유명 화장품 업체들도 한방성분을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들로 제품을 고급화하면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비싼 화장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 불만이 높아지면서 한때 할인 화장품 가게들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저가 화장품 돌풍'을 몰고온 미샤는 변화된 소비자들 요구를 적극 수용, '비싸야 잘 팔린다'는 화장품업계의 통념을 깨뜨렸다.

2002년 뷰티넷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저가 화장품을 선보인데 이어 서울 신촌 이대앞에 1호점을 냈다.

에이블씨엔씨의 2003년 매출액은 123억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인 지난해 1천억 원을 넘겼다.

저가 화장품이 이토록 각광을 받는 것은 경제상황을 반영한 일시적인 효과라는 지적도 있지만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 인식이 바뀐 것이 주요인이다.

에이블씨엔씨 측은 "미샤가 성공한 요인은 '가격 대비 품질 만족'"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저가 화장품'이 아니라 '정상 화장품'이라고 말한다.

값이 싸진 것은 기존 화장품의 거품을 뺐기 때문이며 기존 화장품 업체와 같은 원료를 쓰기 때문에 품질에는 자신있다는 것이다.

에이블씨엔씨 서영필 사장은 "기존 화장품의 내용물 원가는 판매가의 3~7%밖에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태평양이 5천 원대의 저가 화장품을 출시하면서 명동에 '휴영'매장을 오픈하자 미샤 관계자는 "태평양의 진출로 타 화장품업체의 저가시장 진출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로 인해 무엇보다 소비자들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1조 원이 넘는 매출로 화장품업계 부동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는 태평양이 기존 제품과 유사한 성분에 값은 저렴한 제품을 내놓으면 저가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 인식은 또 한 번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더페이스샵은 웰빙트렌드를 활용, '자연주의'라는 이미지로 2003년 12월 시장에 진출했다.

미샤와 달리 더페이스샵은 소비자 기호를 반영한 900가지 이상의 제품과 고급화한 인테리어 매장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샤가 '해피프라이스 해피라이프'라는 구호로 가격을 전면에 내세운 것과는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더페이스샵 정운호 사장은 "마침 소비자들의 패턴도 장기불황이라는 흐름 속에 합리적인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다는 쪽으로 옮겨가는 시점이었다"며 '미 투(me too) 브랜드'로 각인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화장품 가격은 저렴하지만 내용이나 디자인은 최고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경쟁력은 어디서?

저가 화장품의 품질을 믿을 수 있는지 의심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3천300원짜리 립스틱 제품이 3만 원짜리에 비해 좋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가 화장품은 포장용기가 화려하지 않다.

디자인도 단순하다.

그렇다고 포장용기의 질이나 디자인이 조악한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거품을 뺐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유통구조도 최소화했다.

직거래를 통해 유통경로를 단순화했고 외상거래도 하지 않는다.

현금 거래를 통해 금융부담을 최소화한 것도 가격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웃소싱'을 이용한 생산체계도 원가 절감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저가전략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미샤와 더페이스샵이 보아 권상우 등 스타급 모델을 동원한 광고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광고비용은 결국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 더페이스샵은 1만2천900~1만4천900원대의 기초 화장품을 출시하는 등 1만 원이 넘는 제품도 내놓았다.

신제품 출시를 핑계로 가격을 올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더페이스샵 김미연 차장은 "1천여 가지의 품목을 팔고 있는데 1만 원이 넘는 제품은 3가지밖에 없다"면서 "가격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스타를 기용한 마케팅에 대해서도 "메이저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했다"면서 "소비자에게 마케팅 부담을 떠안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미샤 측 관계자는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에도 불구하고 1만 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