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요-하늘재산장 윤성영·이미수 부부

입력 2005-05-21 10:32:58

"백두대간 한가운데 우리집 있죠"

백두산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끼고 내려가다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白頭大幹). 지금은 지리산 천황봉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670km 구간만 오갈 수 있지만 연중 '대간꾼'들로 불리는 산악인들이 끊이지않는다.

백두대간에서도 문경 이화령(548m)~하늘재(525m·문경읍 관음리) 구간은 손꼽히는 난코스. 시쳇말로 '날아다닌다'는 대간꾼들도 종주에 7~8시간, 보통사람은 10시간 이상 걸린다.

하지만 대간꾼들에게 요즘 하늘재는 정겨운 만남의 장소가 됐다. 이화령을 출발, 파김치가 돼 도착한 산꾼들에게 아늑한 휴식을 제공하는 '하늘재 산장'이 문을 열었기 때문.

이 곳의 주인은 1년 전 대구에서 이사 온 윤성영(41) 이미수(38)씨 부부. 밤나무농장 임대관리, 고추·콩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 영하의 날씨 속에 침낭 하나에만 의지해 아무렇게나 잠을 자는 산악인들이 안타까워 창고를 개조한 산장을 열었다.

산장이래야 20여 년 전 얼기설기 합판을 붙여 지은 낡은 집으로 '인테리어'도 신문지 도배가 고작.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대간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낯선 사람끼리 동동주 한잔에 금방 친해져 밤 늦도록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명소가 됐다.

'홀대모'(홀로 대간을 타는 인터넷 모임)들이 2, 3명씩 산장에 모이는 밤이면 가수 장사익의 노래가 산장을 가득 메운다. 홀대모들은 산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어 혼자서 산을 타는 마니아들이지만 이 곳에선 하나가 된다.

"초·중학생인 두 딸이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것을 빼고 나면 산생활은 너무 재미있습니다. 아무런 불평없이 따라와 준 집사람도 잘 적응하고 있고요."

초등학교 때 고향 문경을 떠났다가 되돌아온 윤씨의 말대로 부인 이씨는 벌써 산장지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백두대간에는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지만 산 이름과 등산코스, 어디쯤 가면 자일이 설치돼 있는지, 바위산을 몇 번 오르내려야 정상에 도달하는지를 훤히 꿰뚫고 있다.

"날마다 대간꾼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는데다 우리 집을 찾은 산악인·여행가들이 자신들이 직접 쓴 책을 주고 가시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절로 '백두대간 박사'가 된 것이지요."

음식을 준비하던 이씨가 잠시 손을 놓고 하늘재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홍건적의 난'때 공민왕이 이 곳을 통해 몽진을 한 이야기, 신라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은 이야기, 하늘재에서 충주시 상모면 월악산국립공원까지 걸어서 20여 분 거리 오솔길,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미륵사지와 석불입상(보물 제96호).....

또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알려져있다. 신라 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서기 156년에 북진을 위해 죽령보다도 몇 년 앞서 길을 열었다는 것. 신라는 당시 지리적 요충지인 하늘재를 교두보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는데 중요한 전략거점이던 만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산장에는 소설가 방송인 가수 탤런트 산악인 등 다녀간 유명인들이 남긴 글과 전국 산악회들의 리본이 벽을 장식하고 있어 이 곳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문경 명산 하늘재 왔다 간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우리들의 만남이 대간처럼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글귀는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부인 이씨는 "등산객들이 잠시 쉬었다 떠날 때 도시락과 간식을 들려 보내 다들 좋아하신다"며 "종주를 끝낸 산악인들이 가족들과 다시 찾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사진: 문경 하늘재에 살고 있는 윤성영·이미수 부부는 백두대간꾼들과 함께 산을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부인 이씨가 대간꾼에게 가장 인기있는 김장김치를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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