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반동적(反動的) 사유(思惟)

입력 2005-05-21 08:59:31

오랜만에 동성로 거리를 나갔다.

축제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루고 5월의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지만 왠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는 처져보인다.

난무하는 전단지 속에 군데군데 문 닫은 상점들은 풍요 속 빈곤 그 자체이다.

분명 10년 전의 동성로 모습은 아니다.

친구를 만나 소줏잔을 기울여도 모두들 힘겨워하고 희망이 없다고도 한다.

동양미학에 '경계(境界)'란 말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에서의 최고선을 말한다.

이 마음 공부를 다룬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란 책이 미국 LPGA 선수들 사이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필경 골프선수들이 마지막 홀인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탐독하리라 여겨진다.

화가들의 화룡점정 때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화가들 가운데는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신체와 정신의 합일을 목표로 정진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도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힘들 때 세상을 경험하러 여행을 간다.

그래서 가끔은 세상을 뒤집어보는 혜안을 터득하기도 한다.

안은 보이되 밖이 보이지 않는 무지가 무섭고, 밖은 보이되 안이 보이지 않는 무지 또한 무섭다는 것을 아는 것도 여행에서 얻는 수확이다.

창작자는 행동양식과 사유가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다.

요즘 우리 사회 화두가 '10억 벌기'라 하더라도, 화가의 마음에는 이 사회가 좀 잘못가고 있다고 삐딱하게 본다.

이런 반동적 사유는 어느 사회에서나 깨어있는 예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예술가는 수행자와 같은지도 모른다.

예술가뿐아니라 CEO나 프로 골프선수,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하며 '경계'가 찾아오는 그날까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프로의 자세이다.

고려미술문화연구소장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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