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랑으로 코리안 드림 일궈요"

입력 2005-05-21 08:59:31

프로구단 외국인 선수들의 가족 사랑

국내 프로스포츠계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용병)들의 가족 사랑은 유별나다. 이들은 시즌 중에도 아내의 출산이나 집안 식구의 결혼 등이 있으면 당당하게 휴가를 요구한다. 심지어 지난해 프로농구의 한 용병은 처조모상을 당했다며 휴가를 요구해 구단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역만리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족은 '좋은 성적을 내는 원동력'이다.

이들에게는 1년 열두 달이 모두 가정의 달인 셈이다.

이 때문에 프로 구단들은 팀의 성적을 좌우하는 이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많은 계약금, 연봉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집과 자동차, 통역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18일 대구월드컵경기장 본부석 앞 그라운드. 경기에 앞서 삼성하우젠컵에서 득점왕(7골)에 오른 대구FC브라질 용병 산드로(26)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산드로가 상금 500만 원과 함께 꽃다발을 받자 응원 온 가족들이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자기 최고야(메우 께리두 따봉:Meu querido ta bon)." 두 살 된 딸을 안은 산드로의 아내 케이라(21)는 "남편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남편이 한국무대 데뷔 첫해부터 득점왕에 오르는 등 펄펄 날고 있어 케이라는 대구 홈 경기때는 반드시 경기장을 찾는다.

산드로는 브라질 프로축구 1부리그에서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려 상류층 생활을 했다.

경산 옥산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딸을 보살피는 브라질 보모까지 두고 있다.

휴식일이면 아내, 보모, 브라질 동료들과 함께 쇼핑을 하거나 놀이공원에서 보낸다.

두둑한 계약금(25만 달러)과 월급 2만 달러, 승리(무승부 포함)수당 등을 받기에 돈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일본인 브라질 이민 3세인 그는 얼굴만 봐도 일본계로 느껴진다.

매사에 예의가 바른 그는 "아내의 뒷바라지가 컨디션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며 "식사 때 등 항상 어른을 먼저 배려하는 한국 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미혼으로 사교성이 뛰어난 브라질 용병 인지오(26)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 대구FC 창단 때 입단, 한국 생활 3년째가 되는 그는 '코레아노(브라질 말로 한국인)'로 불린다.

특별식을 먹는 다른 용병과는 달리 그는 한국 선수들처럼 하루 세끼 모두 밥만 찾는다.

우리 말도 곧잘 해 공식 통역이 있기까지는 구단 내에서 코칭스태프와의 의사 소통을 책임졌던 그의 최고 한국말은 '이 새끼야'다.

인지오의 아버지는 브라질 인디언 부족의 추장이다.

올해 구단은 인지오와 재계약을 하지 않을 방침이었으나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추장 복장을 한 인지오의 아버지가 나타난 뒤 재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 있다.

역시 미혼인 브라질 용병 산티아고(25)는 인지오와 같이 생활하다 브라질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최근 경산의 아파트로 옮겼다.

삼성 라이온즈의 도미니카 출신 용병 투수 바르가스(26)는 대구 칠성동 아파트에서 아내 라모나와 2명의 아들(제프리, 제퍼슨), 여동생(다매리스)과 생활을 하고 있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에다 낮은 코, 날카로운 눈매, 하얀 이의 생뚱맞은 바르가스는 '코미디언' 수준의 유머를 자랑한다.

'죽을래~', '장난하냐∼' 등 다른 선수들로부터 배운 단어를 어설프게 발음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제스처로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벌써 6승(2패)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얻은 자신감이 동료와의 유대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생활 3개월째 접어든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쇼핑. 틈만 나면 가족들과 시내를 누빈다.

처음에는 무조건 물건을 사는 '묻지마 쇼핑'에 열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집 인근의 백화점과 할인마트를 자주 찾는다.

쇼핑 품목은 신발, 옷, 액세서리, 먹을 거리 등 다양하지만 돈이 없을 때는 눈도장을 찍었다가 나중에 가서 꼭 사야 직성이 풀리는 '쇼핑광'이다.

그는 "동료나 주위 사람들이 잘해 줘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낀다"며 "가족들과 함께 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사진 : 아내 라모나, 아들과 함께 홈플러스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용병 바르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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