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같은 노인병원 '냄새도 싹'

입력 2005-05-18 11:31:09

지난 13일 오전 대구시가 설립한 수성구 욱수동의 노인전문병원. 환기시설을 잘 갖춘 탓인지 병원의 소독약 냄새는커녕, 쾨쾨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3층 다기능치료실에서 9명의 노인들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희미한 정신, 굳어진 팔과 손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노인들은 파랑, 노랑, 빨강 등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결혼 전 고향에서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갔던 시절을 떠올려 도화지에 옮겼고, 다른 할머니는 이름을 하나 둘 부르며, 자식들의 얼굴을 담았다.

박지은 사회사업실장은 "미술치료는 노인들의 억눌린 무의식을 끄집어내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며 "가족과 떨어진 적적함을 덜어주고 병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원예치료, 음악치료, 언어치료, 가요교실, 레크리에이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한 병실(환자 5, 6명)에 한 명씩 배치된 간병사들이 온종일 식사는 물론 대소변이 어려운 환자의 기저귀 갈기, 세수와 양치질, 목욕까지 도와준다. 내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전문의 4명이 환자의 건강을 맡고 있다. 의사들은 하루 3번 병실을 회진하며, 야간 응급 상황에 대비해 당직 근무를 하고 있다.

관절염과 뇌졸중 후유증으로 입원한 김소분(86)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보다 이곳이 더 편하다"며 "여기에 있으면 매 끼니 먹여주고, 씻겨주고, 치료도 받을 수 있고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걸 요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곳에 입원한 노인은 160여 명. 절반은 치매나 중풍 환자이고 나머지는 거동이 불편한 당뇨병, 관절염 등의 만성 질환자들이다. 대부분 장기 환자들이다. 집에서 생활하다가 간병하는 가족이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는 바람에 단기간 입원하는 환자도 10~20명 있다. '탁노소' 기능도 하고 있는 셈.

뇌경색 후유증으로 부인을 2년째 맡겨 둔 은종수(70) 할아버지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는다. 칠곡에 살다가 부인을 자주 보기 위해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서울과 경주에 자식들이 살고 있지만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기 싫습니다. 퇴직 후 연금이 한달에 200만 원 정도 나오는데 병원비(150만 원) 주고, 용돈하면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기자가 병원에서 만난 노인들 모두가 "병원이 집보다 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서운함이 없을까 싶어 다시 물어도 대답은 한결 같다. 1년 전 입원한 김순덕(84) 할머니는 "남편이 죽고 아들 5명 모두 결혼시킨 뒤 20여 년 동안 혼자 살았다"며 "일요일마다 아들 가족들이 번갈아 문안을 오기 때문에 적적하지 않다. 서로가 편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는 돈이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이어지는 투병 생활로 병원비가 만만찮게 든다. 간혹 병원 안팎에서는 병원비 분담 문제로 자식들이 서로 언성을 높인다는 게 병원 직원들의 귀띔. 때론 가족들이 입원 신청을 하면서 병원비가 덜 들도록 '최소한의 진료'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태준 행정부장은 "사실 가족들이 병원비를 분담한다고 해도 입원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며 "그래서 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하지만 좀 더 싼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병원비의 절반을 넘는 간병료를 보험에서 지급하는 노인요양급여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노인 간병은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간병인이 없으면 거동이 어려운 뇌졸중·치매환자가 전국에 63만 명이 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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