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함께

입력 2005-05-18 08:40:43

컴퓨터, 전자계산기 팍팍한 그런 거 말고

아홉 알, 열 알짜리 주판 하나 갖고 싶다

차르륵 털고 놓기를, 처음처럼 그렇게.

어릴 적 울 아버지 반짝 종이 곱게 싸서

꺼내 놓던 안주머니 아릿한 그 허기까지

또 한번 털고 놓을까, 헐렁한 이 해거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숫자판을 앞에 놓고

허방을 짚더라도 다시 털고 놓고 싶다

세상을 쥐었다 펴듯 그리운 그 계산법으로.

이승은 '그리운 계산'

나이가 지긋한 이라면 이따금 '차르륵 털고 놓고' 싶은 주판을 그리워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손끝에 알싸하게 닿던 그 주판알들의 차가운 감촉!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린 우리들이다.

허방을 짚더라도 또 한번 털고 놓고 싶은 헐렁한 해거름에, 진초록 눈부신 어느 한적한 둑길에라도 올라 보라. 산 그림자 어둑어둑한 봇물에 피라미떼들이 은빛으로 치뛰는 모습에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리라.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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