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안에 한 남자 아이가 나체로 서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목욕 시키면서 속삭인다. "격리시킨다는 말 알지?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지? 넌 안전하지 않아." 아이는 겁에 질려있다. '에비에이터'의 첫 장면이다. 그의 미래에 대한 강렬한 복선이다.
영화 '에비에이터'는 미국의 실존 인물 하워드 휴즈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빼어난 외모와 기발한 두뇌, 막대한 재력 등 모든 것을 가진 하워드의 추진력과 추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오만은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어려서부터 비행기 조종을 즐겼던 하워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사를 인수하며, 굴지의 재벌이 된다. 그는 비행기의 민첩성과 거대성을 스크린에 담기 위해 영화 제작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비행사 역할을 하였다. 영화, 항공 산업 그리고 수많은 여자들은 그의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강박불안이 흥건하게 고여 있어서 평생 고독하게 살았다. 병균에 오염되지 않을까하는 근심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항상 비누를 휴대하며 손을 자주 씻고, 맨손으로 문고리를 잡지 않았다. 자신의 음식에 누가 손을 대면 먹지 않고, 밀폐된 우유만 주문하여 마셨다. 말년에는 스스로 설정한 무균지대라고 여겨지는 자기 방안에서만 지냈다. 그의 강박장애가 알려지면서 하워드로 향한 부러움과 찬사는 조롱과 야유로 바뀌었다.
강박장애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상태를 말한다. 강박증은 여러 가지 주제가 있다. 오염에 대한 두려움, 수도꼭지나 가스밸브를 반복 확인하는 것, 야한 생각이나 남을 해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떠오르거나, 정리정돈에 대한 강한 집착 등이다. 반복적으로 머리털을 뽑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증상도 강박장애와 연관된 행동일 수 있다. 강박적 성격장애와 강박장애는 다른 병이다. 전자는 철두철미하고 주변이 정돈되어 완벽주의적인 인상을 준다면, 강박장애는 자신이 집착하는 주제 외에는 오히려 더 지저분하고 엉망인 경우가 많다. 하워드 역시 빗지 않은 긴 머리카락과 깎지 않은 손톱, 방안에 나란히 서있는 오줌을 받아놓은 병들은 병균을 옮길 지경이다.
영화에서는 하워드의 강박장애의 원인에 대한 단서는 주지 않고 있다. 다만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의 강박증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과거에 힘들었던 일과 관련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기억에서 감정을 떼어내어 깊은 무의식의 창고로 처박아두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피해보려는 노력이다. 생각 따로, 감정 따로가 강박 장애에서 흔히 보는 격리(isolation)라는 기전이다.
하워드는 강박사고에 복종하고, 강박행동이 괴상하고, 입원할 만큼 중증인 것으로 보아 예후가 나쁜 경우다. 그 외에도 소아기에 발병하거나 우울증을 동반하거나, 어떤 것에 지나친 가치를 두는 관념을 가진 경우는 예후가 좋지 않다. 비행기를 타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그때만이 하워드가 지상의 복잡한 고통과 혼돈에서 해방되는 잠시 유예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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