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양심 결집…일본 군사대국화 저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무려 320만명의 내국인이 죽었고, 아시아 각국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뜨려서 크게 희생시킨 것을 돌이킬 때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는다고 명시한 '평화헌법 9조'는 당연히 지켜져야합니다. 그런데도 올가을, 평화헌법 개정안 발의가 확정적이어서 큰 걱정입니다. '9조' 수호에 모든 힘을 다 쏟겠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질서 유지에 결정적 위협이 될 일본의 평화헌법 9조 개정 반대운동을 펴는 세구치 히데오(75, 소설가)씨가 최근 대구, 왜관, 전주를 잇따라 방문했다. 구상 선생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추모제(12일, 경북 왜관)에 참석하고, 국내 문인들도 만난 세구치씨는 일본의 보수우경화에 편승한 군사대국화가 초래할 비극적 종말을 막기위해 양심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 일본 중의원 대다수 평화헌법 9조 개정 바라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패전후 일본의 전력보유금지와 전쟁포기를 명시,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주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평화헌법 9조가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에 의해 용도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다.
"자민당을 포함한 중의원의 2/3 이상(어떤 이는 90%)이 평화헌법을 고치려고 해, 가을 발의는 기정사실입니다. 9조를 개정하기 위해 여론몰이의 사탕발림인 환경문제, 일하는 여성문제를 포함시켜 일괄통과를 노리고 있어 아주 나쁜 상황입니다."
세구치씨는 패전과 함께 연합군에 의해 무장해제됐던 일본이 지난 반세기동안 계속된 평화헌법의 확대해석을 통해 경찰예비대를 만들어 보안대로 바꾸고, 이어서 자위대로 둔갑시켰다가 이제는 종착점에 도착, 평화를 위한 마지막 걸름장치인 9조까지 뜯어고치려는데 혈안이라고 지적한다.
◆ 유사사태시 선제공격 가능한 유사삼법 이미 통과
일본은 이미 국민 총동원령을 연상케하는 전쟁준비법률인 유사사태법, 유사삼법(무장공격사태대처법, 자위대법개정법, 안전보장회의설치법)을 통과시켰다. 유사사태법은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유사사태를 상정하고, 공격의 예후만 보이면 미리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법이다.
이 유사삼법은 1963년에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 소속 고급간부 84명이 극비리에 한반도의 제2전쟁을 상정하고 만들어낸 1천419쪽 분량의 미쓰야(三矢)연구에서 비롯됐다. 그로부터 42년이 흐른 지금 미쓰야 연구가 일본의 보수화, 우경화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징후만 있어도 일본의 선제공격을 가능케한) 유사삼법, 유사사태법에 대한 우려도 굉장히 높습니다." 유사삼법, 유사사태법이 만들어지고, 헌법 9조 개정까지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세구치씨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으니 뭔가 (위험한) 환상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 경제대국 일본에 피어나는 환상
"국민을 평화롭게 잘살도록 해야 나라를 받들지, 나쁜 길로 이끄니 반대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세구치씨는 "국민들이 (2차대전시)권력을 나쁜 길로 쓰도록 방치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았느냐"며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9조 개정'이 결코 일본 국내 문제만은 아닌 위기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의 일본의 평화헌법 9조 개정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 일본의 유엔상임이사국 진출까지 밀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게 동아시아 방위비의 분담만 요구하던 '일본 전력약화정책' 대신 동북아 경찰권까지 주는 막강한 권한 분담 정책을 쓰는데 이어 '9조'가 일본의 미-일 동맹관계의 걸림돌이라며 노골적으로 개정을 요구하고 있을 정도.
◆ 동북아 방위라인에서 한국 제외 우려
일각에서는 미국의 동북아 방위라인이 6.25 직전의 에치슨 라인처럼 일본-대만-필리핀으로 그어져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할 정도. 이런 의미에서 "9조 개정'은 독도문제나 역사왜곡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침략전쟁으로 죽은 인류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평화헌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9조 가운데서도 전력을 갖지 않는다고 명시한 2항은 더 소중하다. 그런데도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젊은 세력들이 일본이 잘사니 뭔가 일본의 저력을 과시하려는 환상적 관념론에 빠져 일본을 더 강한 나라로 만들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도 9조 개정 반대
문제는 평화헌법 수호세력이 대부분 일본 노년층이라는 것. 생산적 에너지와 파급력이 강한 젊은이들을 이 운동에 끌어넣는데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가을 의회에서 헌법 개정안이 발의가 되면, 국민투표에 붙여져 과반수 이상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는 세구치씨는 올바른 정신으로 여론을 수렴해야할 저널리즘마저 개정을 위해 한수 더뜨고 있어서 크게 우려한다.
"9조를 개정하면, 일본이 또다시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새로운 죄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야죠." 아시아 평화유지에 필수적인 평화헌법 개정 반대 움직임은 차차 들불처럼 번질 것으로 보인다. 노벨문화상 수상자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우메하라 다케시(학자겸 평론가), 이노우에 히사시(소설가) 등이 동참하고 있다.
◆ 문화계에서 시작, 국민 전체로 확산시킬터
"처음 캠페인에 불을 지른 것은 문화인들이었는데, 지금은 국민 전체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평화헌법 수호파들이 일간지에 '우리는 평화헌법을 지킵니다'는 광고까지 했다. 세쿠치씨의 고향인 미야자키현에서만 1천여명이 헌법을 수호키로 결의했다.
"만주사변때는 일본 국민들이 전쟁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습니다만 지금은 전쟁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투표에서 거부돼야하고, 거부될 것으로 믿습니다." 세구치씨는 한국을 필두로, 아시아 각국 평화세력들이 '9조 개정반대'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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