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의원 청소년 자원봉사자들
자원봉사자들로만 병원을 꾸려가는 대구 남산동의 성심복지의원. 이곳에는 자원봉사 200시간을 훌쩍 넘긴 6명의 청소년이 있다. 때로는 어르신들께 재롱둥이 손자도 되고, 때로는 간호사의 역할을 맡아 병원 잡무도 맡아 보는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은 병원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꾼들.
성적에 매달려 학원을 전전하고, 집에서는 왕 대접만 받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자원봉사를 통해 삶을 풍성하게 살찌워가는 6명의 청소년이 말하는 '나눔의 기쁨'을 들어봤다.
▲찾아서 하는 봉사
'자원'봉사라고 하지만 요즘 학생들에게는 자원봉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심복지의원의 학생들은 다르다. 누가 가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어김없이 주말이면 병원 문을 들어선다.
가장 어려보이는 홍정표(심인중 3)군은 성심 복지의원의 청소년 자원봉사 팀장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성심복지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해 온 홍군은 경력으로는 이곳에서 최고. 자원봉사 시간으로만 무려 548시간을 활동했다. 4년 동안 주말마다 거르지 않고 봉사활동을 해 온 것이다. 혹시라도 귀가 어두운 할머니들이 이름을 잘못 알아듣고 뒤바꿔 진료를 받는 일이 생길까 걱정돼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이름을 대부분 외워버렸다는 홍군은 붙임성도 좋아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인기 만점이다.
정의석(경상공고 1)군은 봉사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자진해 반성문을 쓰는 용기를 보여줬다. 올해 초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봉사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 여느 학생들 같으면 그냥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말았을 테지만 정군은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계속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반성문을 썼다. 정 군은 "놀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지 못했지만 따스하게 등을 토닥여주는 할머니들을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잘못을 고백할 용기가 생겼다"며 "요즘도 가끔 갈등을 하지만 다시 반성문 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정확하게 봉사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얼굴을 붉혔다.
▲공부와의 갈등
자원봉사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학생들이지만 공부와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숙제다. 성적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탓에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수십 번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어렵게 병원문을 들어선다고 했다.
청소년 자원봉사단의 맏형인 이종욱(대구서부고 2)군은 요즘에는 봉사를 계속해야 할지 더욱 고민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누나와 함께 4년간 봉사활동을 계속해 왔지만 고3을 앞두고 갈등이 커졌다는 것. 이군은 "평생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대입을 위해서는 잠시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빨리 성적보다 봉사활동경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강갑모(경신중 2) 군은 5군데의 학원에 다니느라 주말이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정형외과 의사로 성심의원에서 진료봉사를 하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 봉사활동은 빠지지 않고 열심이다.
청소년 자원봉사자 관리를 맡고 있는 장귀선 사무장은 "가끔은 피곤함에 찌든 아이들의 얼굴이 안쓰러워 '잠을 자는 것이 봉사'라며 병원 한쪽에서 잠을 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인생도, 사랑도 배웁니다
성심복지의원에는 자원봉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함께 봉사를 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받는 사랑을 한번 맛보고 나면 헤어날 수가 없다는 것. 마영민(학산중 2년)군은 "처음에는 내가 사랑을 나눠준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봉사를 하면 할수록 받는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이것을 깨닫고나면 봉사활동을 그만둘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참 삶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어르신께 뭐라고 말을 하며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 막막해 눈을 질끔 감아버렸던 영민 군은 봉사를 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떨칠 수 있게 됐고, 갑모 군은 가정방문으로 인연을 맺었던 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는 길을 배웅하며 '헤어짐'을 배웠다. 또 김판재(심인중 3)군은 "연말연시 거리모금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모금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의 각박함을 알게 됐다"며 어른들의 무심함을 꼬집었다.
이런 세상공부와 사랑공부의 맛에 봉사활동을 그만둘 수 없다는 6명의 학생들. 지금은 200~500시간 자원봉사 기록을 넘겼지만 1만 시간, 2만 시간을 넘길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의 얼굴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더 빛나보였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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