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길을 묻는다-이규태 경북여고 교사

입력 2005-05-16 10:58:01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학교 밖에서 추천받기가 쉽지 않았다. 관련해서 전문 강사 특강을 자주 여는 도서관들에 부탁하니 이구동성 현직 교사를 추천해 의외였다. 만나기 전에 홈페이지 '이규태의 국어사랑'(user.chollian.net/~godshand)부터 들렀다. 깔끔한 디자인에 개인 홈페이지로는 방대한 자료들. 꼼꼼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구수한 목소리에 털털한 경상도 아저씨 인상이었다. 그 속에 우리 말글에 대한 사랑이 한껏 담겨 있는. 학생들의 실상과 가정에서,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지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논술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좋은 일이다. 문제는 단순한 글쓰기 훈련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대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논술은 구성적 사고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쓰기의 형태만 배워 찍어낸 성형미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은 논리적 근거를 갖고 합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지 글쓰기 실력을 뽐내라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발산적인 사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사고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하나.

△컴퓨터의 기억장치인 램(ram)과 비교할 수 있겠다. 얼마나 많은 외부 지식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는 정보와 조합하느냐에 따라 램의 성능이 판가름난다. 사고력도 유동하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훈련을 통해 성능을 키워갈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독서와 사고력이 직접 관계있나.

△학생들 시험문제를 푸는 모습만 봐도 평소에 얼마나 독서를 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읽기가 부족한 학생들은 지문을 한 줄씩 어렵사리 읽는 반면 읽는 능력이 있는 학생들은 문단 단위로 척척 읽어내고 답으로 연결시키는 사고도 쉽게 해낸다. 이것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상당 기간 꾸준히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독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심각할 정도로 책을 안 읽는 게 사실이다. 읽는다고 해도 인터넷 매체로 읽는 게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판타지 소설류이다 보니 사고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와 관련된 책들도 흔히 읽는데 줄거리나 극중 분위기, 인물 등에 너무 좌우되는 게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고전을 안 읽는다는 것이다. 독후감 과제를 내라고 하면 한 학년 몇 백 명 가운데 유명 고전 독후감 몇 편을 찾기가 힘들다.

-고전은 다소 지루하지 않은가.

△감성적이고 말초적인 학생들에게 고전은 읽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란 드라마나 영화처럼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다. 좋은 책이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쳐 인간의 내면세계를 짚어가는 것이다. 잘 읽으면 감동이 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데 우선 재미없어 보인다고 외면하면 영영 읽지 못하게 된다.

-읽기에 흥미를 붙이는 방법이 있나.

△학생 스스로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터넷을 열면 재미난 게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럴 땐 학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좋다. 아니 최선의 방법이다. 자녀에게 책을 읽도록 하려면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한다. 권장도서 목록에 따라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자. 아이들은 부모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고 생각도 쑥쑥 자랄 것이다.

-부모들이 독서지도를 하기는 어렵지 않나.

△많은 부모들이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아무도 지침을 주지 않고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주위에 찾아보면 다양한 권장도서와 가이드가 있다. 아이들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삶의 경험이 담긴 어른들의 종합적 판단력을 따라오기는 힘들다. 단순한 동화책 읽기에서부터 굵은 주제와 흐름을 함께 찾아나가는 연습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몰라보게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론 능력도 부모가 길러줄 수 있나.

△경상도 학생들이 특히 안 되는 게 토론 능력이다. 발표를 시켜 보면 손 드는 학생이 거의 없다. 발산적 사고를 하는 훈련이 안 돼 있다는 것이다. 무엇무엇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는 숙제를 내면 생각은 안 하고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비슷한 자료들을 편집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생각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바닥 수준이다. 의미도 제대로 모르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무작정 혼자 읽을 게 아니라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상대로는 부모가 가장 좋지 않겠나.

-지역 학생들의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

△서울대 논술경시대회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계속 참가했는데 1회부터 4회까지 논술경시대회를 할 때는 수상 학생이 적잖았는데 5회부터 국어경시대회로 바뀌고 말하기 평가까지 들어가니 수상자가 현격하게 줄었다. 앞으로 대학별 고사가 강화되면 우리 학생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면접 때 사투리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지만 논리적 대응력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걸 좋다고 하는 지역의 정서도 학생들의 경우엔 좀 달라져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 이규태(47) 교사는 경북대 국어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나왔다. 80년 교직에 몸을 담아 덕원고, 대구과학고 등을 거쳐 현재 경북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