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추풍령

입력 2005-05-14 10:47:21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 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서도 우리 귀에 익숙한 추풍령(秋風嶺·해발 221m)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나뉘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승용차를 타고 가면 고개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특히 요즘은 이곳을 지나는 국도 4호선 확장공사 고개 정상에 세워져 있던 '추풍령 노래비'마저 잠시 철거돼 어디가 추풍령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임진왜란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왜군과 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곳이기도 한 추풍령은 과거 조령(烏嶺), 죽령(竹嶺)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이자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조령과 추풍령은 나라가 관리한 관로(官路). 길이 더 잘 닦여 있었던 터라 추풍령이 말을 타고 달리기에는 더 나았지만 과거길 선비들은 이 고개를 애써 피해갔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즉 낙방을 연상케 하는 이름 때문이었다. 과객들은 추풍령 대신 6km 정도 길이 더 멀고 험한 김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리 사이 '궤방령'을 더 많이 이용했다. 더욱이 궤방령의 '방(榜)'자는 합격자 발표 때 붙이는 '방(榜)'과 같은 글자다.

이 무렵 추풍령은 주막거리로 흥청거렸다. 1905년 경부선 철도 부설 후에도 추풍령 부근은 식당이 즐비하고 여인숙도 두 개나 있는 번화가였다. 일본인들이 김천은 몰라도 추풍령은 알던 시절.

그러나 추풍령의 호황은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먼지 폴폴 날리던 길에 지쳐 추풍령에서 으레 먹고 자고 다시 길을 떠나던 차들이 반나절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추풍령을 잇는 국도는 통행량이 급격히 줄었던 것.

현재는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산악인들이나 드라이브 나온 연인들이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추풍령 고개를 따라 도로변에서 성업을 누리던 상가들도 하나 둘씩 떠나 지금은 썰렁한 분위기다. 고개 아래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인구도 1960년대 8천여 명이던 것이 지금은 2천800여 명으로 급감했다.

게다가 최근엔 추풍령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4, 5년 후 이 도로가 완공되면 대부분 차들은 추풍령을 그냥 지나칠 것으로 예상돼 상가 업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황인성(56) 영동군의원(추풍령면)은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추풍령은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질 우려가 크다"며 "추풍령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주민들 중심으로 '추풍령 보존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원화 등 많은 노력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추풍령 할매갈비' 식당 이명선(45)씨는 "23년째 장사를 하는데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줄어 일대 업소들이 심각한 영업부진을 겪고 있다"며 한때 번화했던 추풍령의 옛 명성을 아쉬워했다.

추풍령 정상 부근에서 12년째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송점순(56)씨는 "충북은 밤 12시 통행금지가 없었던 곳이어서 예전엔 통행금지를 피해 경북 쪽에서 추풍령으로 술 마시러 오는 술꾼들도 많아 재미가 쏠쏠했다"며 "외지인들 발길이 뜸한 데다 우회도로 개설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사진설명 : 경사가 완만해 고개임을 느끼는 힘든 추풍령 고개 정상 부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