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용성면 김기일씨

입력 2005-05-12 16:57:48

꽃, 수석, 분재…자연이 숨쉬는 농원

집에도 집주인의 철학이 담겨져 있어야 제 맛을 낸다.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놔도 볼거리가 없으면 그것으로 집의 생명은 다하는 것.

경산시 용성면소재지를 향해 달리다보면 국도변에 웅장한 대저택이 눈에 들어온다. 대구에서의 교사 생활을 접고 고향 선산 곁으로 들어온 김기일(57)씨의 집. 2천여 평의 대지. 한마디로 거대하다. 거대함을 뒤로 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많은 볼거리에 또 한 번 놀란다.

높이 솟은 솟대,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승들, 조그마한 돌로 쌓은 돌탑, 아담한 서각 정자, 개, 토끼, 닭 등…. 끝이 없이 이어지는 300m의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쉬 지루함이 몰려오지 않는다. 복숭아밭과 배밭, 소나무, 느티나무, 모과나무, 자두나무 등 수많은 정원수들을 보며 집주인이 누군지 궁금증만 인다.

드디어 문제의 집주인 김씨가 나타났다. 수수한 작업복 차림에 면장갑을 낀 손에는 전지가위가 들려져 있다. 그동안 만났던 전원주택 주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전원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게 할 정도.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현재 집의 모양새를 갖추는 데만 6년이 걸렸다고 했다. 매일같이 하루 종일 매달렸다는 김씨의 말에 그의 열정이 풍긴다. 정원에 흩뿌려져있는 모든 장신구와 조각품들을 김씨 혼자 만들었다니. 전직이 교사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 집의 컨셉은 농원이다. 그래서 수많은 식물들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다. 돌, 나무, 야생화의 천국인 셈. 게다가 집이 문중산을 끼고 있어 더 넓은 정원을 덤으로 얻기까지 했다.

"처음 이 땅을 살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요. 산 밑의 응지라 곡식도 자라지 않는 땅을 왜 사냐고 했지요."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씨의 생각은 10년이라는 기한을 두고 좋은 농장을 하나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체험학습장으로 공개하는 것.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세 동에서 그의 이런 계획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야생초 소공원이 자랑스럽게 자태를 뽐낸다.

드디어 다다른 현관에 들어선 손님을 기묘한 남근목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 집에 사는 식구가 아마도 수천 명은 될 것"이라는 김씨의 말대로 집안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특이하다.

'집이야, 박물관이야.' 그가 평생 모았다는 수석과 분재 천지다. 게다가 벽마다 붙어있는 예술사진들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정원은 물론 집 안에도 자연이 숨 쉬고 있는 것.

2층으로 된 집은 전시관처럼 말끔하게 정돈돼 있어 꽤 넓어 보인다. 하지만 건평은 60평. 수천 명의 식구들이 함께 살기엔 좁은 느낌이다. 응접대, 선반 등 집안 장식품들은 모두 나무다.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 모두 예술이다.

1층 부부 공간에는 집주인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었다.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공개하려고 지어진 집이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 차원의 의미다. 문 하나를 통해 안방과 서재, 화장실, 그리고 드레스룸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 집 안에 또 집이 있는 셈이다.

2층은 아이들 방과 다실이 들어섰다. 넓은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은 유럽의 어느 궁전 생활이 부럽지 않다. 게다가 다실 바닥은 옥돌을 깔아 건강도 염두에 뒀다. 옥돌 바닥에 푹신한 방석을 깔고 앉아 녹차 한잔을 마시니 여유로움이 절로 밀려든다.

수석 수집가, 사진작가, 화가, 조각가, 정원사, 분재사 등. 하늘이 그에게 내린 재능은 솔직히 부럽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작업일 터이다.

조만간 인근 저수지 두 곳까지 정원을 더 넓힐 계획이란다. 더 넓어질 정원의 조경에 쓰일 오래된 기와 등 재활용품들이 곳곳에서 김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의 집은 미술관, 동물원, 박물관, 수목원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집이다. "정확하게 4년 뒤인 2009년 문을 열 것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들은 김씨의 말에 묘한 기대감과 흥분으로 온몸을 적셨다.

사진 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정용의 500자평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못 다한 경험들을 해보고 싶어진다고 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면서 멋스럽고 풍요롭게 살고픈 마음이야 세월의 흐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것이다.

김기일씨는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서 수십 년간 준비를 해왔다. 사진에서부터 분재, 수석 수집에까지 사람이 하나에 최고에 오르기도 힘든데 3가지 분야에 각각이 최정상의 위치에 올라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

분재의 숫자는 물론이거니와 우수작품들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2천여 점의 수석은 '성모마리아상' 등 수작들이 즐비하다. 그의 주택 1층에서 2층 계단으로 이어지는 벽면에 붙은 사진 작품은 사진작가들이 부러워하는 일출시의 '오메가'를 담았는데 이것은 사진기술도 기술이거니와 열정에 대한 신의 보답인 듯하다.

김기일씨는 49세 되던 해 교직을 떠나 본인이 준비한 사진, 분재, 수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나무 숲이 너무 아름다운 김씨의 문중산 옆에 2천여 평의 토지를 매입했다.

분재·수석원에는 장승, 솟대, 야생초 소공원들(할미꽃, 박하밭, 머구밭, 패랭이꽃밭)이, 정자인 일석정, 인력거 타이어로 만든 부부 모형 등이 재미나게 정리되어 있다. 조경에 쓰인 것들은 재건축으로 나온 오래된 기와 등 재활용품들이 많다. 그는 매일 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부부가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지만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어린이, 어른들께 보여주어 즐거움을 주기 위해 지금껏 준비했습니다. 그날이 곧 올 것입니다."

'早起三朝 當日天', '삼일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더 산 것과 같다'는 고사성어를 평생에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김씨는 좌우명처럼 늘 부지런함으로 노년에 대한 준비를 확실하게 함으로써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집에서 향기롭게 사는 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락하실 번호는 053)251-158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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