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튀지 않으면 죽는다

입력 2005-05-12 10:54:55

최근 여성의원들에 의해 '가장 여성친화적이지 않은 남성의원' 1위에 뽑힌 어느 의원은 "호주제 폐지 반대에 앞장서서 그런 모양인데 내 스스로 질 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본회의에서 남성의원들에게 '불편한 것 떼버리자'고 한 건 시선을 끌려고 그랬던 거다. 안 그러면 백날 반대해봤자 기사 한 줄 안 써주니까"라고 말했다.

꽤 유명한 의원인데도 언론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과격한 발언을 했다는 게 눈물겹다. 자신을 팔기 위해 남들의 주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로 진입했다는 주장이 실감난다.

속된 말로, 튀어야 산다. 그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정보 폭발을 몰고 온 인터넷 시대의 생존 법칙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점잖게 이야기하면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다. 인터넷에 '언어 테러'가 난무하는 것도 남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의 결과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저명 인사들의 과격 발언이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더욱 잦아진 것도 '주목 경제'가 알게 모르게 조성하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그런 '주목 경제'의 무풍지대로 머무르는 양반 동네가 있으니 그게 바로 지방이다. 튀어도 전국적으로 튀어야 살지 지방에서 튀면 죽는다. 왜 지역사회에서 튀는 건 어려울까? 한번 튀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혈연'지연'학연 등 모든 연고가 총동원되는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얼굴 마주 보고 살면서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느냐는 인간 품성론도 제기될 것이다.

좋다. 거기까진 이해하자. 지역사회에서 누군가를 대놓고 비판하는 게 어렵다는 건 눈 감아 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도미노 효과'에 있다. 튀면 안 된다는 법칙은 비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상상력과 실험정신까지도 규제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원래 과감한 실험정신이란 위험부담의 이유 때문에 작은 규모의 시장에서부터 일어나는 법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달리 말해, 지방에서 왕성한 실험정신이 발휘돼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것이 중앙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모든 게 '중앙에서 지방으로' 전파되는 일방 코스다. 예컨대, 미디어를 보자. 방송의 토론프로그램 같은 것도 토론자들끼리 격렬하게 싸워 시청자들로부터 욕먹으면서도 시청률은 높은 구성방식을 지방에서 먼저 선보일 법도 한데, 지방의 토론 프로그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다. 신문도 중앙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격적인 실험을 해볼 법 한데도, 행태상 중앙지에 비해 훨씬 더 보수적이다.

물론 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토론프로그램에선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라 싸우기가 어려울 것이며, 신문이 무슨 실험을 해도 중앙지의 형식에 중독된 독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모든 걸 다 설명하지 못한다. 지방 미디어가 지방민들의 주목을 쟁취하지 못한다면 중앙 미디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어렵지만 지방자치 자체가 빈 껍데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방민들의 주목을 받는 건 중앙 미디어엔 시장 확대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지방 미디어엔 근본적인 존재 이유의 문제라는 것이다.

요컨대, 미디어 종사자들이 알게 모르게 중독돼 있는 "튀면 안 돼!"라는 정서가 더 큰 이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구조상의 문제 때문에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받거나 정당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미디어 종사자들의 냉소주의를 낳게 했겠지만, 나름대로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고까지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구조 탓은 서울을 향해서만 하고 지방 내부에선 우리 탓을 해야 한다. 뜻있는 지방 원로'엘리트들부터 에헴 하고 점잔 빼면서 기득권만 챙기지 말고 앞장서서 튀는 걸 허용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돈 따먹는 게 혁신이 아니라 그게 바로 혁신이다. 전국적 차원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튀지 않으면 지방은 죽는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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