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러시아 승전기념식 참석 '역사의 아이러니'

입력 2005-05-10 09:30:50

지난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독일, 터키 순방을 수행했던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처음 대통령을 수행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외국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을 매우 인상깊게 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세계 속 위상이 국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조 수석의 언급을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의 언론용 발언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 수석은 그 말을 독일 베를린에서도 했고, 순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러시아의 2차대전 전승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모스크바에서도 목격된다.

러시아에서 현대자동차가 시장점유율 1위라고 한다.

삼성의 휴대전화, LG의 가전제품도 최고 인기 상품이다.

러시아의 자존심이라는 볼쇼이 국립극장의 가장 큰 후원자가 삼성이다.

또한 50여 개국 정상의 전승 기념행사 참석을 취재하기 위해 각국의 기자들이 모스크바에 몰려들었는데 한국과 미국, 일본 기자만 다른 나라 기자들과 숙소가 다르다

현지 관계자는 각국 기자들이 묵는 호텔이 너무 낡아 한국은 별도의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전승 행사를 치르며 바쁜 와중에 6개국 정상들과 별도 환담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에 한국도 포함됐다.

정상 간 만남은 15분여에 불과했지만 주최국 대통령이 특별히 시간을 낸 것은 그 국가의 '위상'에 대한 배려일지 모른다.

2차대전 전승 기념은 러시아가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은 1945년 5월 9일을 기념하는 것. 이날 독일이 항복하자 여유를 가진 러시아는 대일 선전포고를 했으며 북한에 진주해 분단의 아픔을 안겼다.

이런 행사에 우리가 참석해 북핵문제를 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더구나 이런 현장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대한 사념에 젖는다는 것도 또 다른 아이러니일지 모르겠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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