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洙 칼럼-이 세상의 가장 뜨거운 지옥?

입력 2005-05-10 08:43:38

가정과 가족 관계 심각한 危機 / 바꾸기·챙기기 價値觀 바꿔야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과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은 가정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일깨운 명작이다.

비정상적인 가족생활이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가정은 끝내 파탄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떠올리고 있다.

'보바리 부인'은 어느 시골 의사 부인의 애정 행각을 그렸다.

다정다감하고 몽상적인 성격의 주인공 에마가 정사를 거듭하다가 빚이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줄거리를 담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백미다.

한편, '보바리 부인'보다 스무 해 뒤에 나온 '인형의 집'은 은행가의 아내로 행복하게 살던 주인공 노라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인형 노릇'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다는 얘기를 다뤘다.

널리 읽힌 이 작품 속의 노라가 신여성의 대명사로 부각되면서 여성 해방 운동에 불을 지피기도 했었다.

얼마 전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1994년 '가정의 해'에 "결혼을 통한 인간 가치의 발견, 부모가 돼 느낄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의무적 사랑, 출산과 자녀 교육의 위대함 등이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문화는 병든 문화"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바리나 노라는 물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질타했던 '병든 문화' 정도는 시쳇말로 '새 발의 피'가 돼 버렸다.

가정의 안정과 가족 관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아 웬만한 충격은 '엽기적 가정 파괴 다반사' 속에 묻힐 지경이다.

흔히 가정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며, 그 마지막 보루나 소중한 안식처라고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인정이 각박해질수록, 직장이나 사회가 급변하고 유동적일수록 그런 말이 부각되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가벼워질 수 없다.

실제 요즘 가정이 '속박의 사슬'로 작동하거나 이지러지고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심지어 가정의 구성원 간에 서로가 심하게 상처를 입히므로 '이 세상의 가장 뜨거운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예전에는 세상이 느리게 바뀌었다.

안심하며 믿을 만도 했었다.

한 고장에서 태어나면 거기에서 살다 죽는 게 보통이었고, 일자리는 대개 '평생직장'이었다.

친구는 언제까지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와는 아주 다르게 '변화'가 일상화돼 버린 오늘날 믿을 만한 건 혈연관계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 남은 인간관계조차 '불편할 때는 언제나 끊을 수 있고 바꿀 수도 있다'는 가치관의 뒤틀림으로 파탄에 이르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핵가족의 폐해는 더 큰 것 같다.

가까운 탓에 그만큼 더 쉽고 진하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가족 간의 불화에 지난날처럼 어른이나 친지 등 중재자가 끼어들 여지마저 없어져 버렸다.

싸움을 피해가게 해주던 다른 인간관계마저 없어져 그 함정은 더 커진 셈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 위한 희생을 미덕이나 숙명으로 여겨 왔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주면서 이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교육은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부모의 희생을 공짜로 여기는 분위기가 됐고, 극단적으로는 패륜적 이기주의, 노부모나 어린 자식 유기 등으로 이어지게 한 건 아닐는지…. 날로 높아가는 이혼율 역시 헌신은커녕 상대의 헌신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 탓이 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챙기기와 편 가르기,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냉혹함, 뿌리 없이 흔들리는 가치관 등은 반드시 지양돼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갖가지 기념일로 가득 차 있는 이 '계절의 여왕' 5월에 보바리나 노라를 무색게 할 지경으로 무너지거나 이지러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를 새삼 떠올려본 건 이달이 '가정의 달'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은 근로자의 날이자 아버지의 날, 5일은 어린이 날, 8일은 어버이 날이었다.

오는 15일은 스승의 날, 16일은 성년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15일은 또한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하다.

이런 날들의 의미를 진정으로 되새겨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굳이 이런 날들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 '하도 안 되니까'에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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