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격려

입력 2005-05-09 11:11:09

미당 서정주는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회고하며 그에 좌절하지 않는 강렬한 생명의 욕구를 노래한 대표작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우리도 오늘의 나 자신이 있기까지 나를 키운 성장의 자양분이 무엇일까 자문해보자. 필자가 언뜻 떠올리는 답은 탄수화물도 단백질도 지방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수한 금기와 욕설, 맹목적인 순종과 복종의 강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준 격려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이에 대한 독재만큼 세계 전반에 걸친 큰 사회적 문젯거리는 없을 것이다. 어떤 노예나 노동자도 어린이만큼 무한한 순종을 요구당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이제 어린이들 편에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라고 몬테소리는 말했다. 우리의 현실은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로 더욱 절망적이다. '어린이는 게으르고 무능하고 백지여서 어른이 지도하고 뭔가를 그려 넣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부모들의 지배적 견해이다.

상당수 부모들은 자녀의 학습계획과 학원 시간표는 물론이고 자질구레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간여한다. 그리고 그 실천과 성과를 가혹하게 평가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고문에 가까운 언행으로 아이를 학대한다. 이는 어린이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았는데도 수학 점수가 이 꼴이냐? 너는 가능성이 없는 놈이야. 이번 시험도 또 망쳤냐? 양심이 있으면 밥을 굶어라. 다음에 또다시 이따위 성적을 받아 오면 집에 못 들어 올 줄 알아라. 5층 집 아이는 이번에도 1등 했다더라. 너는 똑같이 새벽 밥 먹고 학교 다녔는데 어찌 이 모양이냐. 너 같은 인간을 낳은 내가 죄인이지…." 이런 악담과 저주는 부모와 자식 모두의 인격을 파괴한다. 이는 고문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운전자가 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민'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부모나 교사가 학생에게 가한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 생각해 보자. 단순한 신체 불구자가 불행한가? 정신적으로 열등감에 빠져 매사에 자신 없고 남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 불행한가? 사람은 누구나 어떤 한 부분에서는 남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장점과 천재성을 타고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이러한 장점과 미덕들은 무수한 언어폭력에 의해 파괴된다. 사람은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천재성이 발휘되고 번득이는 재치가 나온다.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는 신뢰를 보여줄 때 자녀들은 더욱 의젓하게 행동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정말로 달라져야 한다. 시간을 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몰아붙이고 욕하고 위협하는 말을 버리고 한동안 믿고 기다려 보자.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발적이고 독립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따뜻한 격려를 갈망하고, 시련과 좌절의 순간에 꾸중보다 진정으로 함께 아파해 줄 사람이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부모만큼 자녀의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모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며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까닭 없이 방황하고 이유도 없이 반항하던 그 철없던 시절, 그러나 지금은 아름답게 추억하는 그 때를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도 관대하자.

윤일현(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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