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력 2005-05-09 11:12:06

폭력은 인간의 인격을 파괴한다. 가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 잔인한 수법을 사용하게 되고 피해자는 최소한의 품위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은 둘 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한 언어폭력도 물리적 폭력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인격 발달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언어폭력은 청소년의 잠재능력과 창의성을 파괴하고 매사에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한다. 또 자율적인 학습의지를 꺾어버리고 반항심을 품게 해 세상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부모가 저지르기 쉬운 언어폭력의 사례를 살펴보고 대책을 짚어본다.

◇자신감 상실의 첫 번째 이유

우리나라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모든 시간과 경제적 여력을 자녀를 위해 바치고 있다. 부모는 당연히 자신이 희생하고 노력하는 만큼 자녀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온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부모 자식 간에 진정한 대화가 단절되기 쉽다. 실망감이 인내의 한계를 넘게 되면 자녀에게 온갖 악담과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며 재기의 의욕마저 꺾어버릴 수 있다.

▲사례1

늘 수학 100점을 받던 어느 고3 여학생이 한 번은 80점을 받았다. 학생보다 어머니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는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최근에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옷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너 요즘 바람났냐. 외모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 그러니 수학 점수도 그 모양이지'라고 쏘아붙였다.

이후 모녀 간에 냉랭한 관계가 계속되었고 다시 시험이 다가왔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시험을 잘 쳐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며 이번에 100점을 받지 못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수학 시험의 난이도는 평소 수준이었지만 계산이 복잡한 문제가 몇 개 있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문제지 사이로 엄마와 선생님의 얼굴이 오갔다. 결국 그날 시험도 80점을 받았다. 엄마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엄마의 말이 말같지 않느냐"며 심한 말로 꾸짖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과정이 되풀이됐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수학을 못하는 것은 이 집안의 내력인 모양이다.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아버지도 수학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고, 고모도 온갖 과외를 다 시켰는데 결국 수학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단다. 할 수 없지. 나도 이제 포기했다." 이 학생은 다시는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례2

모의고사를 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온 엄마가 고3 아들 A군에게 아래층 B군의 엄마가 한숨을 쉬며 걱정하더라는 말을 했다. A군이 이유를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래층 아이가 지난 번 시험에서는 원점수 500점 만점에 495점을 받았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490점도 못 받았기 때문에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는 것이다. 몇 점을 받았기에 그런가 다시 물었더니 489점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는 아래층 엄마가 부러워 죽겠다는 말도 더 보탰다. 아래층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A군은 310점을 받았다. 엄마의 말 속에는 '이런 점수를 받고도 너는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느냐. 너는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염치도 모르는 가치 없는 인간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엄마가 아무리 무심히 얘기를 해도 듣는 아이는 결코 태연하거나 무신경하지 않다. 자신도 잘하고 싶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그 답답함조차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태연한 척 할 뿐이다.

▲사례3

C양은 시험을 칠 때마다 답안지 마킹에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마킹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1 때 몸이 아픈 상태에서 시험을 치던 중 마침 종이 울렸는데 급하게 답안지에 마킹을 하다가 한 칸씩 내려써서 시험을 망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두고 엄마는 신중하고 철저하지 못하다고 몹시 꾸짖었고 그때 이후로는 시험 때마다 실수를 할까봐 두려웠다.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더 자주 실수를 했다. C양은 시험을 칠 때 늘 시간이 부족하다. 답안지 마킹이 부담스러워 항상 종료 20분 전부터 답안지를 작성하기 때문에 언어 영역 지문이 길거나 영어 수학 문제가 어려울 때마다 다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C양은 다 풀지 못해도 답안지 마킹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풀이한 것이라도 제대로 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연구에 따르면 5세 아이들은 평균 90%가 자신의 창의력을 사용하지만 7세는 10%, 어른은 2%만이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지게 되는 여러 사회적 제약, 다양한 책임과 의무에 따르는 부담감 및 결과에 대한 두려움 등이 타고난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기대만큼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때 무조건 자녀를 나무라기보다는 평소 자신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자녀를 대하고 있는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것은 남과 비교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무라거나 잠재 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들을 때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에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 아이는 내 아이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녀에게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자녀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불안감은 인간의 모든 잠재능력을 파괴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자녀가 실수를 반복하고 좌절할 때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현명한 부모는 항상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자녀가 무언가를 도모할 때 일시적인 결과에 따라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심한 말로 꾸중하며 몰아붙이지 않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자세를 유지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던지는 심한 꾸중이나 능력에 대한 의심과 같은 언어폭력이 자녀의 창의력과 잠재능력을 파괴하거나 사장시킨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실수를 했을 때 부모로부터 늘 꾸중부터 듣는 학생은 매사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실수를 두고 스스로 못마땅해 하며 힘들어 할 때 부모는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며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월 모의고사가 대학입시의 1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냈을 경우엔 마음 편히 수험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만, 처음에 실수를 해서 꾸중이나 비난을 듣게 되면 그 상처가 1년 내내 남아 수험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초등학생 부모든, 수험생 부모든 이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를 곰곰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부모들이 무의식중에 던지는 한두 마디의 언어폭력에 자녀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자신의 잠재능력까지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곤 한다. 사진은 학부모 교육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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