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농촌 자연부락이 고층 아파트 숲으로…'
달서구 월촌마을 일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변모한 지역 중 하나. 20년 전 1만여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인구가 25만여 명으로 늘었고 1만, 2만 원 하던 땅값이 수백만 원, 도로 가 일대는 1천만 원을 호가하며 20층 이상 고층아파트가 곳곳에 숲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당시 우씨 집성촌에 살고 있던 우종희(53·우씨문중 총무)씨는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왜 이리 달라졌는지?"라며 "앞산 순환도로가 생기기 전에 이 일대는 한적한 시골농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진풍경도 많았다.
현 월배로 일대는 당시 2차로였는데 버스 등이 지나가면서 흙으로 된 갓길에 '움푹움푹' 구덩이를 파놓으면 수시로 힘센 마을 청년들이 동원돼 삽, 곡괭이 등으로 평탄화 작업을 했다.
또 이 일대는 대구시에 편입돼 있었지만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어 택시기사들이 시외요금을 적용, '웃돈을 달라!', '못 준다!'며 승객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지금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곳은 경북기계공고 1곳뿐 온통 변했다.
송현주공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은 나지막한 야산이었으며 월촌지, 지당 등 연못들도 없어져 흙으로 메운 뒤 상인동 서한, 청구아파트 등이 우뚝 솟았으며, 대서중학교 등 학교가 들어섰다.
앞산 아래 버드나무 길이 현재 앞산순환도로가 됐으며 이후 대구시 청소년수련원과 앞산 승마장 등이 건립됐다.
달서구청, 달서경찰서 등이 있던 곳은 예전 공동묘지 자리. 롯데백화점, 대구지하철공사 등이 들어선 상인네거리 일대는 온통 '논'이었다.
한편, 현재의 달서구는 1988년 서구, 남구, 달성군 등 일부 지역이 합쳐져 생겨났다.
또 그 이전에는 대구시와 달성군의 경계에 위치, 달성군에 속했다가 다시 시로 편입되는 등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달서구청 이봉호 보도팀장은 "불과 20년이지만 지금은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다"며 "도시계획에 따라 잘 정비된 달서구의 발전상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사진: 오른편 큰 건물이 경북기계공고. 가운데 야산과 양측 연못은 현재 없어지고 고층아파트와 학교 등이 들어섰다.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는 현 월배로. 위쪽으로 멀리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고층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현재의 모습.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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