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댐 30년-(4)안동댐 생태계 새 질서와 균형

입력 2005-04-28 16:35:05

안동댐 주변 주민들의 생활은 각종 규제에 묶여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호수의 생태계도 과연 그럴까.그동안 안동호는 외래어종인 배스와 블루길이 판을 치면서 우리 토종 물고기들은 씨가 말라버린 것처럼 비쳐졌다. 무분별한 수입 어종의 방류와 댐이 고유의 하천(河川)형 수중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안동호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호수(湖水)형 생태계로 질서를 찾았고 자연 스스로도 훼손된 환경을 복원하는 능력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지난 30년 동안 달라진 안동호 생태계를 들여다봤다.

◇줄어든 외래종 되돌아온 토종

안동댐 축조로 인공호수인 안동호가 만들어지자 새 어자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기관'단체, 정치인 등이 앞다퉈 치어를 방류했다. 배스와 블루길, 떡붕어, 찬넬메기, 백연어, 초어 등 낙동강에서 서식하지 않던 대형 어종과 낯선 외래어종들도 이때 들어왔다. 인공호수에 물고기만 많이 풀어놓자는 생각뿐이었지 생태계 교란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댐 준공 이후 처음 10년간은 붕어와 잉어, 메기와 동자개, 강준치 등 호수형 토종 민물고기의 천국이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낚시꾼들도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낚시가게로 한몫 잡았다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민물낚시점이 번창했다.

주민 이상용(50'안동시 용상동)씨는 "주낚으로 메기와 동자개(속칭 빠가사리)를 가마니때기로 잡아 대구 칠성시장에 총알택시로 실어 날랐다"며 "뱀장어와 쏘가리는 귀했지만 준치와 치리, 피라미는 너무 흔해 개도 먹질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토종 어류의 치어'알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엄청난 속도로 번식한 배스와 블루길이 호수 어디서나 눈에 띌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제는 배스보다 토종 쏘가리가 더 많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김대일(46'임하면 추월리)씨는 "붕어와 잉어 수가 줄면서 이를 먹이로 하는 배스와 블루길 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 같다"며 "지난해부터 본댐축과 와룡면 주진교 일원에서는 배스낚시에 쏘가리가 더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서른 살 안동호에는 이제 꺽지와 동사리, 피라미, 갈겨니, 참마자 등 하천형 생태계의 소형 어족들은 사라졌다. 대신 인공으로 방류한 빙어는 안동호에 정착, 호수변 어민들의 겨울철 소득원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마리당 60만 원을 호가하는 대형 뱀장어도 심심찮게 잡히고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물속에서도 통하는 걸까. 10여 년 주기로 변화하고 있는 안동호 수중 생태계가 이채롭기까지 하다.

◇자연 다큐멘터리 연출하는 새 생태계

매년 봄철마다 백로떼가 장관을 연출하는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소나무 숲. 인적이 드문데다 바로 앞 하천에 3, 4월이면 산란기 빙어가 무리지어 거슬러 올라와 백로들에겐 '천혜의 보금자리'다.

둥지마다 알에서 깨어난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새끼 백로들의 힘찬 날갯짓은 구경꾼들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 사진작가 이운규(49'안동시 태화동)씨는 "사람들이 보호한다고 해서 저렇게 백로 서식지가 번성할 수 있겠냐"라며 "훼손된 부분을 복원시키는 자연의 무한한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 김명진(67)씨는 "댐 준공 이후 백로가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불어나면서 백로 배설물 때문에 말라죽는 소나무도 점차 늘고 있다"며 "백로 증가는 빙어떼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것은 빙어와 백로뿐만이 아니다. 안동호 어류 생태계의 먹이사슬 꼭지점은 얼핏 배스와 쏘가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차지하고 있다. 먹잇감인 배스, 쏘가리가 증가하면서 안동호는 '수달 천국'이 된 것. 아직까지 학계'환경단체의 공식적인 조사는 없었지만 어민들은 그물을 찢어놓거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수달의 횡포(?)가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밖에 안동호에는 민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민물 가마우지, 바다갈매기, 제비갈매기, 원앙, 독수리 등 희귀 조류들도 계절마다 찾아들어 생태계 보호를 위한 학계의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 안동댐에서 천연기념물 328호 하늘다람쥐를 처음 촬영한 안동댐관리단 권영목(52)씨는 "인공호수는 주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줄만 알았는데 30년 동안 지켜본 결과 안동호가 호수 생태계의 새 질서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자연 복원과 환경보전 노력

1990년대 초여름이면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마을 앞 낙동강은 산란기 은어(銀魚)가 여울마다 가득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물에 들어가면 은어가 몸에 부딪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댐 물막이 공사 이전 멀리 부산에서 거슬러 올라 온 은어가 낳은 알(치어)들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 탄생한 육봉형(陸封形) 은어는 안타깝게도 96년쯤 그만 자취를 감췄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는 강 어부들의 문의가 안동시청에 빗발치기도 했지만 수산진흥청 등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적인 치유와 복원을 기다리기 10년. 올해 처음으로 육봉형 은어 복원사업이 시작돼 관심을 끌고 있다. 안동시는 경북도 내수면개발시험장과 함께 올해 5∼10㎝ 크기의 영덕 오십천산(産) 은어 치어 3만 마리를 댐 상류지역 낙동강에 방류했다.

안동시청 권수준(52) 내수면 담당은 "치어들이 안동호에서 월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라며 "안동호 수질이 1급수로 개선됐고 치어 방류량을 늘려갈 경우 절멸된 안동호 은어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자연복원 노력은 1993년 가두리 양식장의 철거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됐다. 댐 상류 수역에 대한 오폐수 정화시설 확충과 단속이 강화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특히 최근에는 갈수기에도 일정 수위를 유지, 호수에 수초가 살 수 있도록 호수 내에 수중 보(洑)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수초 불모지' 안동호의 수중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동댐관리단 수질담당 박재충(40)씨는 "호수변 얕은 물가 돌 틈 등지에 산란하는 붕어, 잉어 등은 수위가 떨어지면 알이 그대로 말라 죽기 십상"이라며 "수중 보가 설치되면 연꽃 단지와 인공 어류 산란지 등을 손쉽게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주민들 사이에 민물 말조개를 이용한 진주조개 양식사업도 추진되고 있어 조만간 안동호에서 빙어에 이어 은어와 연근, 진주 등 새로운 특산품이 생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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