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살에 낳은 늦둥이, 11대 종손 외아들. 등굣길의 동엽이(당시 영남중 3년)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려 하자 그날따라 아버지 신씨는 아들을 한 번 안아주고 1천 원을 주며 배고플때 라면이라도 사먹으라고 했다. 2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꽝',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그때만해도 신씨는 그 소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앗아가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쌍둥이 아들 준형'준희(당시 영남중 2)도 그랬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선 두 아들은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네거리.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길 직장인들, 차량들로 한창 러시아워를 이루던 그 시각. 갑자기 지축을 흔드는 듯한 대폭음과 280kg의 철제 복공판들이 휴지처럼 날아올랐다. 치솟는 불길, 시뻘건 화염이 이글거리는 지하공사장으로 떨어지는 수십대의 차량들, 가슴을 찢는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 그날, 상인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는 101명 사망, 202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사고공화국'이라 할 만큼 온갖 대형 인재(人災)사고가 잇따랐던 때라 대구시 도시가스공사의 허술한 배관관리,건설업체의 부실시공,안전불감증 등이 빚어낸 총체적 사고에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은 상인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구,아니 전국을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지게 했던 이 사고는 아직도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유족이 수십명에 이르며, 아들의 죽음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한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늦둥이를 낳아 새 희망을 키워가기도 하고, 희생자 추모사업과 사고예방 활동에 애쓰는 유족들도 있다.
◇ 올해 10주년을 맞아 유족들은 1996년 대구 달서구 학산공원에 세운 위령탑 앞에서 마지막 추모식을 가졌다. 정덕규 유족회장은 이번 행사를 끝으로 그간의 일을 마음 속에 묻고 추모공원을 시민들의 안전교육 산 교육장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 살아남은 자들에게 다시는 그와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상인동 가스 참사 영령들이 편안히 영면하기를 기원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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