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환경과 생명에 감동하라

입력 2005-04-28 08:46:11

지난해 서울시내 초등학교 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환경 특강을 했다.

환경 하면 생각나는 일이 무어냐고 묻자 한 아이가 말했다.

"성묘하러 산에 갔었어요. 숲 깊은 데서 무언가가 제 콧잔등에 툭 튀어 올라왔어요. 개구리였어요. 아, 이 개구리가 자연이구나. 고마워라 살아있구나 그런 생각 했어요."

환경운동연합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주일 간 섬진강 발원지에서 하류까지 도보순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참가했던 어린이들이 섬진강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진강아, 너는 시작은 나보다도 작았지만, 점점 커지고 넓어졌다.

구불구불 흐르면서 종개와 소금쟁이와 피라미를, 부들과 갈대와 길가의 버드나무를, 다람쥐와 박새와 솔개를 불러왔다.

또 올게. 너 보러 또 올게.'

동강을 살리자는 국민운동이 벌어졌다.

어린이들이 동강에 쓴 글을 보내왔다.

'나는 동강의 돌멩이가 되고 싶어요. 나는 동강의 가장 작은 돌멩이가 되어 동강을 지키고 싶어요.'

감히 말하건대, 이 마음이 자연이다.

이 마음이 모든 생태적 사유의 정점이고 환경을 지키려는 모든 이들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지극한 울림이다.

우리는 이 울림에서 얼마나 멀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4천 년 전 중국의 사막화율은 전 중국 면적의 4%였다.

19세기가 되자 10%로 늘어났고 21세기에는 28%가 되었다.

4천 년 전에 비해 오늘의 중국 사막화 속도는 175배가 되었다.

황사는 사막화 면적이 늘어날수록 한반도를 괴롭힐 것이나 황사가 한국사회의 가장 책임 있는 어른들인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됐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무뇌아를 낳은 어머니가 나는 매연을 뿜어내는 저 공장의 굴뚝과 관계하였다는 비극적 고백의 시 '공장지대'를 쓴 최승호 시인은 독일 라이프치히에 시낭송 초청을 받아 갔다가 독일 지식인 사회의 중심적인 화제가 생태학과 불교였음을 알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사실 불교적 사유의 궁극 또한 생태적이라 할 수 있다.

불교 생태적 사유의 중심지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그런 사유를 하고 있는가.

2005년 3월 '워싱턴 환경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취재하러 온 한국 특파원들과 만났다.

영화제에 참석한 미국 문화예술계와 사상계의 거인들이 담론하는 미국의 3대 주요 화두가 '환경, 에이즈, 가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특파원들은 한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우리는 여전히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외치고 구조조정과 노사문제가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인데 기후변화협약에 가입 않는다고 세계로부터 욕을 먹는 세계의 제국, 미국이 사실은 여론 주도층부터 환경을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가 결집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나온 반응이었다.

아직도 환경 악화를 경제성장의 당연한 대가로 받아들이는 사유가 불러온 비극이 지난 3월 10일부터 중국 동남부 산업지대에서 발생했다.

저장성 둥양시 일원의 화학공장 밀집지대에서 환경악화로 인해 고통을 받아오던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1만 7천 명의 시위대가 "우리에게 땅을 돌려 달라, 맑은 시냇물을 돌려 달라"고 외치며 일어섰다.

국가권력이 토지의 분배와 산업의 배치를 결정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사회안보가 환경악화로 인해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저명한 민간환경연구기관인 월드워치연구소가 펴낸 '지구환경보고서 2005'는 환경가치가 사회운영의 중심이 되는 세계를 안보의 개념으로 다시 설명한다.

더 이상 국방의 안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내는 안보, 즉 환경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안보는 환경가치를 지키는 활동이다.

환경안보를 위한 첫걸음을 한국사회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실천은 의식에서 나온다.

의식은 감수성에 힘입는다.

생태적 아름다움, 그 건강성에 감동하고 생명의 동반자로 여기는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어른들이 가져야만 한국사회는 환경가치를 중심으로 자기 재조직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녹색변화를 이룰 때만이 또한 한국사회가 지구촌 환경거버넌스의 건설, 지구적 환경안보의 실현에 기여하는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은 힘이 세다.

환경과 생명에 감동하자.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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