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미군 자꾸 줄어 부대주변 매상 뚝

입력 2005-04-27 11:31:34

손님끊긴 거리 적막감만…

"미군들이 떠나면 우리들의 삶의 터전도 줄어들겠지. 그 사람들 덕분에 수십 년간 먹고 산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좋은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어."

25일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미군 캠프캐롤부대 후문 일대. 한때 한국인지 미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미군들로 넘쳐나던 이곳에서 G.I(Government Issued·미 육군 병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외국인은커녕 한국인의 발길조차 뜸하다. 한때 밤거리를 환하게 밝히던 클럽들의 네온사인도 화려함을 잃고 간판만 덩그러니 내걸려 있었다. 핫팬츠의 금발미녀와 흑백의 미군들이 흥청거리며 달러를 뿌려대던 진풍경도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주한미군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미군부대 주변 상가가 휘청거리고 있다. 캠프캐롤 후문 앞에서 25년째 경양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유건봉(56)씨는 "이젠 미군상대 장사는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미군들이 아니라 대부분 주변 주민들과 양식집을 찾아온 한국인들이라는 것.

옷가게를 하는 김덕석(71)씨도 긴 한숨만 내쉬었다. "10여년 전까지만해도 경기가 괜찮았는데 요즘은 뭐 매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한 달에 1, 2건도 못 판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부산에서 옮겨와 21년째 양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성근(53)씨도 "옛날에는 미군들이 달러를 펑펑 써댔는데 이젠 돈이 없는지 무조건 싼 물건만 찾는다"며 혀를 찼다.

미군들을 상대로 가장 번성했던 미군전용 클럽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 일대에는 모두 13곳의 클럽들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영업이 제대로 되는 곳은 5, 6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문을 닫을 수 없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세를 내놓은 가게도 여럿이다.

장사가 안되다 보니 한국인 여종업원들도 많이 줄었다. 한때 러시아 여성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영어가 되는 필리핀 여종업원들이 대다수를 차지, 40여 명에 이른다.

ㅋ클럽 강경수(51) 사장은 "미군 자체적으로 자정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종업원들도 손님과 대화를 나누거나 포켓볼을 함께 칠 정도로 분위기가 예전과 완전히 변했다"며 "업주들도 큰 욕심 없이 적게 벌고 마음 편하게 영업한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 클럽들은 미군 측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국내 전반에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미군들과 감정이 안 좋아진데다 외출제한 등 통제가 심해져 극심한 영업난에 처했던 것. 일부 클럽은 여종업원들이 무대에서 춤을 췄다는 이유로 미군 측이 출입금지 조치를 내려 8∼10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 최근에야 영업을 재개했다.

후문 사람들의 영업난은 최근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미군들의 영내 거주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셋방 임대업을 하던 주민들도 지난해 말부터 방이 텅텅 비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군상대 영업을 그만두고 폐업을 서두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생 해온 일들을 그만두기가 쉽지않아 망설이고 있다. "미군들이 더 이상 떠나지만 않는다면 옛날의 전성기만큼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야 낫지않을까요." 동두천 등 전방의 미군부대들이 철수하면 왜관으로 옮겨오지 않겠느냐는 상인들의 막연한 기대감 속에는 초조함마저 묻어났다.

한편, 왜관 캠프캐롤은 1959년 5월 병참장비 부대로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캠프캐롤이란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순직한 미군 '캐롤' 중사의 이름을 딴 것. 미군부대의 규모는 81만4천여 평. 외곽둘레만 10.4km에 달한다. 병참부대인 이곳에는 1천200여 명의 미군들과 300여 명의 카투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1천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장비보급 및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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