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생각-붉은 산

입력 2005-04-25 11:11:04

'붉은 산'은 김동인이 193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식민지 상황 속 조선민의 비애와 민족 독립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에서 볼 수 있는 의사 직업을 가진 '여(余)'라는 1인칭 관찰자가 만주를 여행할 때 목격한 일을 그리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 하나 볼 수 없는 광막한 만주벌판에 자리잡은 ××촌은 조선인 소작인만 이십호가량 모여사는 작은 촌이다. 이곳에는 삵이란 인물이 살고 있다. 여(余)가 방문하기 1년여 전부터 마을에 나타난 삵의 장기는 투전과 싸움, 트집잡기, 칼부림, 남의 색시에게 덤벼들기 등이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삵이라는 인물을 싫어하며 마을 사람 누구 하나 그가 죽는다고 해도 안타까워할 사람이 없다.

그 와중에 사건이 발생한다. 소작료를 적게 냈다고 하여 만주인 지주가 마을의 송첨지를 죽인 것이다.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누구도 앞장서려 하지 않는다. 이런 송첨지의 소식을 여(余)가 삵에게 전하자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비장함에 번뜩였다.

다음 날 동구밖에 가보니 삵이 초주검 상태였다. 그는 혼자 만주인 지주에게 찾아가 그를 해치고 자신도 죽음 직전에 이른 것이었다. 삵은 죽어가면서 여와 마을 사람들에게 붉은 산과 흰옷을 찾으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애원한다.

1. 마을 사람들은 만주인 지주의 부당한 횡포에 꼼짝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옳고 그름, 즉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밥줄의 문제요, 힘의 문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사람들은 정의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살기 위해서 혹은 편하기 위해 정의나 진실이 외면되는데 대해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나는 내 편리를 위해 정의나 진실을 외면해본 적이 있는가. 학급 내에서 그런 상황을 본 적이 있는가?

2. 이 소설의 주인공 삵과 아큐정전 속의 '아큐'는 몹시 흡사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가졌다. 둘 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없어져도 아쉬워할 사람이 없다는 점은 닮았지만, 삵은 자긍심을 버리지 않고 폭력에 저항했고 아큐는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합리화에 충실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두고 작가 김동인이 '삵'이란 인물을 만들어낸 것과 중국 작가 루신이 '아큐'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3. 삵은 죽어가면서도 붉은 산과 흰 옷을 보고 싶어했다. 그만큼 조국애가 깊었으며 만주인의 핍박에 저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안중근, 윤봉길 등 애국 의사들은 인품까지도 아름답게 그려지게 마련이지만 작가는 어째서 삵을 시종 미움 받는 사람, 없어져야 할 사람으로 그렸을까? 삵을 미워하는 보통 조선인을 결국은 비겁자로 그림으로써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붉은 산과 아큐정전

이 소설에는 일제에 조국을 잃은 상실감과 비애감이 짙게 깔려 있다. 삶의 터전을 읽고 삭막한 만주땅까지 쫓겨간 뒤에도 지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는 민족의 수난을 뼈저리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억눌린 민족의 감정을 '삵'의 행동이 어느정도 해소시켜주기는 하지만 '죽일 놈'으로 묘사되던 '삵'이 만주인 지주에게 복수를 했다는 반전은 사실 납득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김동인의 붉은 산을 루신이 쓴 아큐정전과 비교해 보면 반전의 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큐정전에서 중국인의 전형으로 묘사된 '아큐'라는 인물과 얼핏 선량한듯 보이는 이 소설의 마을 사람들과는 공통점이 있다. 비굴하고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정작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는 것. 하지만 정말 '나쁜 놈'으로 묘사된 삵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인물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마을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겁함(?) 때문에 우리가 나라를 잃는 수모를 당했다고 강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루신이 '아큐'라는 인물을 내세워 서양 열강들의 침략으로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과 중화주의에 빠져있던 중국인들을 꼬집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이기적 인간

식민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일부는 독립운동의 큰 뜻을 품고 타국생활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이 중 상당수는 먹고살 길을 찾기 위해 조국을 등진 것이었다. 물론 우리 민족 개개인이 모두 독립을 향한 큰 뜻을 품고 일본에 저항했더라면 식민지 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아예 식민지가 되는 위기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렇게 대의를 찾기보다 우선 생명의 유지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탓에 이들을 탓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남들에게 비겁하다고 욕을 먹을 지라도 일단은 남과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인 것이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인간의 우매함과도 비슷하다. 5명이 모두 다 입을 맞춰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전체가 다 살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 나머지 자신의 죄를 경감받는 대신 다른 4명의 죄를 모조리 털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행동 성향을 무작정 비겁하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간혹 전체는 물론 자신까지 곤경에 빠뜨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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