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두고오니 정이 쌓이네요"
"아이고 숨차대이" "왔다, 왔다.
슛!" "골키퍼 나이스"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은 지난 22일 오후 7시 대구시 북구 구민운동장. 왁자지껄 한바탕 법석이 벌어졌다.
제멋대로 복장에다 축구화도 갖추지 못한 '동네축구'였지만 모두들 열심이다.
이 날 한판 붙은 선수들은 경북도청 과학정보산업국 직원들. 과학기술진흥과·지역산업진흥과 연합 팀이 정보통신과와 맞섰다.
'판돈' 20만 원에 승부욕이 지나쳤을까.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치열한 문전 몸싸움 중 한 직원의 발이 그만 김영수(52) 정보통신과장의 안면을 강타했다.
김 과장은 머리를 감싼 채 벤치로 '긴급후송'됐고 직원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 경기는 계속됐다.
고참 담당(계장)들이 다리가 풀려 연달아 넘어졌고 깔깔깔 웃음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웃으면 안되는데 어쩌지…."
이날 시합은 경북도청이 4월부터 본격 시행 중인 '과별 차 없는 날' 행사의 하나. 차량 10부제에도 여전히 주차공간이 좁은데다 각급 기관 17곳이 몰려 주차난이 해결되지않자 대안으로 나온 아이디어다.
차가 없다 보니 퇴근길 한 잔이 부담없기 마련. 자연스레 국장부터 말단까지 한 자리에서 마음을 여는 대화를 나누게 됐다.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를 맡은 과학기술진흥과 조성용(28)씨는 "지난 2월 구미시에서 도청으로 전입해 아직 서먹서먹한데다 간부들이 많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같이 뛰고 나니까 소속감이 훨씬 는 것 같다"며 "부서별 업무협조도 훨씬 잘 이뤄지지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2일 중국 요리집에서 직원 35명이 참가한 가운데 식사모임을 가진 총무과 채홍승(42)씨는 "과장이 하위직 직원들에게 저녁을 사준 건 처음"이라며 "평소 많이 빠졌던 여직원들의 참석률도 높았다"고 만족해했다.
술 대신 스포츠·문화생활을 누리기도 한다.
재정과는 지난 12일 신천 무너미터에서 족구대회를 열었고, 투자유치과는 지난 달 29일 전 직원이 영화를 보러 갔다.
직원들과 영화 '말아톤'을 함께 본 김홍묵(57) 투자유치과장은 "언제 영화관을 갔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2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며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직원들의 마음을 봤다"고 흐뭇해했다.
'차 없는 날' 행사를 기획한 양인석 총무담당은 "차 없는 날이 직원 단합으로 연결되고, 새 직장문화를 만들고 있다"며 "아직 초기단계라 프로그램도 다양하지 못하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경북도는 이와 관련, 행사 개최실적에 따라 부서별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한편 10부제 준수율과 병행, 우수 직원에 차량주유권 시상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장님, 오늘 우리 책임 좀 져 주이소." "알았다.
오늘은 내가 쏜다.
끝까지 가보자." 전자결재와 전자우편에 단절됐던 선후배, 동료간의 정(情)이 동산 위 보름달만큼 커 보였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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