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파이프오르간 대중화 앞장 김춘해씨

입력 2005-04-23 08:49:47

따뜻한 봄 햇살에 쑥 고개를 내민 연초록 잎사귀 위로 석양이 곱게 물드는 저녁 무렵 대학캠퍼스에서 만난 오르가니스트 김춘해(48·여·계명대 교수)씨는 이렇게 운을 뗐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나에게 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가 나이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흔여덟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童顔)인 김 교수는 부산이 고향이다. 부산대 음악교육학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기독교 모태 신앙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접한 뒤 연주를 하고 싶었지만 1975년 대학 입학 당시 부산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을 전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80년 미국 유학을 통해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서의 꿈을 이루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사, 북텍사스대에서 오르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을 바꾸면서 고생도 많았다.

만삭의 몸을 안고 떠난 유학시절,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 연주 기법이 달라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피아노와 달리 파이프 오르간의 경우 발로도 건반을 밟아야 하기 때문. "파이프 오르간 음악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가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연주할수록 영적 매력에 빠집니다." 김 교수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김 교수는 1991년 계명대 교수로 부임한 뒤 파이프 오르간 음악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아직 생소한 분야다.

가톨릭교회에서 미사 때 사용하기 위해 소규모 파이프 오르간을 도입한 경우를 제외하면 1970년대 후반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것이 본격적으로 파이프 오르간 시대를 연 계기가 됐다. 30여 년의 짧은 역사로 인해 파이프 오르간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연주자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계명대, 대가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일부 대학교에만 파이프 오르간 전공이 개설되어 있어 음악대학 내에 파이프 오르간 전공이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는 외국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자연이 준 최고의 악기입니다. 바람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도 자연을 닮은 악기입니다. 이렇게 좋은 악기가 널리 사랑받지 못하고 있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 교수는 1999년 계명대 성서캠퍼스 내 아담스 채플이 준공되면서 3천800여 개의 관을 가진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자 파이프 오르간 대중화와 전공자들에게 연주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지난 3월 김혜향·심정은 독주회 등 매월 두 차례 정도 오르가니스트들의 연주회를 꾸준히 갖고 있는 것. 5월에도 권언수 독주회, 대구·경북 오르간연구회 연주회도 열 예정. 또 후원회도 조직해서 1년에 두 차례 후원회 기금으로 국내외 저명한 파이프 오르가니스트 초청 연주회도 열고 있다.

지난해 2학기부터는 캠퍼스 내 '정오의 오르간 음악산책' 코너도 만들었다. 매주 화·금요일 낮 12시30분부터 20여 분간 열리는 '정오의 음악산책' 코너에는 대금, 클래식 기타, 클라리넷 등 다양한 분야의 연주자들도 함께 출연, 색다른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규모가 큰 파이프 오르간의 특성상 악기를 옮길 수 없어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음악회만 열리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동이 가능한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이용해 찾아가는 음악회도 열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주중에 하루를 정해 파이프 오르간 음악에 신학, 철학 등 다양한 강좌를 접목시켜 파이프 오르간 연주 폭과 관객층을 넓히고 싶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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