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꽃밭 두 부부 "꽃보다 아름다워"

입력 2005-04-23 08:49:47

"대학 4학년 때 늑막염에 걸려 힘들었을 때 병원 뜨락에 피어있는 튤립을 보고 그 강렬함에 힘을 얻었습니다. 내 집을 마련하면 꼭 튤립을 심겠다 생각한 것이 벌써 30여년째 농사 틈틈이 튤립을 키우는 이유라면 이유죠."

문경시 가은읍에서 튤립꽃하면 주민들은 곧바로 남무희(62·요셉)씨를 떠올린다. 논농사, 밭농사, 벌꿀농사로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정신없지만 집 안팎 뜰에 튤립꽃을 심어 정성스레 가꾸고 있기 때문.

"하루 농사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먼저 튤립꽃밭에 앉아 꽃과 대화를 나눈다"는 남씨는 요즘 재미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해 독일로 유학 간 큰 아들 상대(29)씨가 보내온 노란색, 보라색, 자주색 튤립 구근이 꽃을 활짝 피워 빨간색 하나뿐이던 꽃밭이 더욱 화사해진 것.

남씨는 이달 말이면 부인 이재연(54·마리아)씨와 한달 정도 여행(?)을 떠나게 돼 튤립들이 슬퍼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50여 군의 벌통을 차에 싣고 왜관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출발, 문경 호계면을 거쳐 경기도 부천까지 아카시아 꽃을 따라 양봉에 나서는 것.

"벌써 코 끝에 아카시아 향이 나는 것 같아 새색시 시집가듯 가슴 두근거리며 출발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다니는 도중에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죠."

집 인근인 농암면 청암중·고등학교에서 72년부터 99년까지 학생들에게 농업을 가르치다 퇴직 후 아예 농업을 생업으로 삼은 남씨는 각종 작물에 농약 사용은 일절 않는다.

잡초도 제초제 대신 손으로만 뽑아내고 지렁이와 미생물이 살아있는 친환경농법을 고수해왔다. 100여 그루에 이르는 주목도 전지를 자제하고 멋대로 커도록 했다.

밭에서 키운 고추와 콩은 한번도 시장에 내다팔지 않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도 나눠주지만 3년여 전 개발한 노란콩 검은콩 청국장 가루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1천여 명의 고객에게 직판을 한다.

"야채와 버섯, 생고추 반찬뿐인데도 우리집을 찾는 손님들은 그렇게들 맛있어할 수가 없어요. 콩이고 고추고 다 어떻게 키웠냐며 한마디 묻지도 않고 사겠다고 그래요." 이미 오래전부터 웰빙이 아니라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친환경적 삶)를 실천해온 남씨부부의 자연 예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남씨는 천주교 가은성당 사목회장을 맡아 신자들과 함께 지역에서 많은 봉사활동도 펴고 있다. 자신의 농장 한쪽 편에는 '기도의 집'도 마련해 여름, 겨울방학 때면 전국에서 많은 대학생이 이 곳에 찾아와 머물며 마을 학생 지도와 농활 등 봉사활동을 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남씨는 농사일 틈틈이 시(詩)도 쓰는 시인이다. 아직까지 외부에 알릴 정도는 아니라며 겸손해하지만 작곡을 전공한 마리아 수녀님이 그의 시에 부쳐준 목가풍의 노래 '작은 꽃(小花)'은 이웃에게 이따금씩 들려주기도 한다.

'내 맘에 작은 뜰 있네/ 내 안에 소박한 꿈을 키우네/ 내 안에 작은 뜰은/ 내 작아짐에 많은 이가 머무네/ 내 마음의 문을 여니/ 온 누리가 내 안에 차고/…오!/ 내가 작아짐에 우리가 작아짐에/ 기쁨이 오네 평화가 오네'

문경· 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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