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관의 인물탐방] 대·경 민주동우회 성진용회장

입력 2005-04-22 11:13:34

"美서 김혁규 前지사와 가방장사했죠"

"학창시절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민주화를 외쳤던 선.후배 친구들이 세월의 흐름속에 사라져 가고 있는 옛 냄새를 같이 맡으며 우정을 나누자는 거다. 학창시절 정열과 감정을 다시 살려 애국애족 하는 길을 찾는 것도 삶의 보람이 아닌가" 지난주 서울서 열린 대구·경북 민주동우회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뽑힌 성진용(成珍鏞. 57) 영백산업 대표가 말한 모임의 설립 취지다.

"대구·경북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다. 대구·경북의 방향에 따라 각 지역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런 진실과 역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굴절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을 막은 채 내 것만을 고집하다 대구·경북이 제 몫을 앗긴 채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 회장의 본업은 가방장사다. 지난 83년 미싱 3대로 시작한 성 회장은 일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산다. 공장이 있는 중국을 비롯 전세계 거래처를 누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방을 만들어 판다. 10여년전에는 벨트 파우치(허리에 차는 가방)로 미국시장에 선풍을 일으켰다. 뉴욕서 가방장사를 하던 김혁규(金爀珪) 의원(전 경남지사)과 손발을 맞추던 때의 일이다. 당시 뉴욕 김 의원 가게에는 아침이면 소매상들이 150m이상 줄을 서기도 했다. 김 의원의 처남이 그와 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라 김 의원과의 교분은 오래되고 남다르다.

대학 졸업 후 학원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의 회사를 인수해 시작한 첫 사업에서 거덜이 났다. 엄청난 빚을 안고 서울로 옮긴 그가 세운 인생의 목표는 '빚을 갚는 일' 이었다. 스스로 미싱을 돌리며 미친듯이 일한 덕택에 10년 목표가 8년여로 단축됐다.

곤궁하던 시절 세운 삶의 지침이 있다. 빚도 있었지만 받을 것도 있던터라 돈을 받으러 다니던 그는 "그렇게 돈을 받으러 다니면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그 때 그가 생각한 게 이렇다. '돈을 받는 것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내 의지가 통하지 않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받을 어음을 모두 태워버렸다. "인생에서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 공장을 하다보니 중국에 대한 생각이 많다. 임금이 싸지만 생산성도 우리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노동관리가 훨씬 쉬운 덕택이다. 간접자본 투자를 늘리며 기반을 다지는 중국은 위협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물결을 두려워 하기보단 큰 덩치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경제에는 국경이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 경쟁보다 국제 경쟁력이 문제다. 국내 경제주체들의 가격 높이기 경쟁은 바뀌어야 한다"

대구 신암동 토박이로 대구고와 경북대 농대를 나왔으며 대구고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대구고만 해도 전체 동문 2만 7천여명중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이가 1만여명에 이른다. 서울 면목동 버스종점 옆 본사 그의 사무실 의자와 책상은 변두리로 자리를 잡아야 했던 시절 마련한 것들이다.

논설위원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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