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재즈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

입력 2005-04-20 08:39:47

운명처럼 다가온 영혼의 소리…"입술 부르트도록 불었죠"

잠시 잊었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첫 인사와 함께 얼떨결에 손을 내밀게 할 만큼 그는 유쾌하고 당당했다.

재즈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31). 어쩌면 그에게 하모니카는 운명의 악기인지도 모른다.

생후 보름 만에 시력을 잃어버려, 빛의 잔상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에게 '크로마틱 하모니카'는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이자, 교감의 장치다.

지난해 10월 하모니카 연주만으로 구성된 국내 첫 재즈 음반을 낸 전제덕은 1급 시각 장애인이자 국내 유일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다.

그의 첫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하모니카의 재발견', '영혼의 연주' 등의 극찬을 받았다.

지난 3월 열렸던 '200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하기도. 사실 그의 음악성은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받아왔다.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BMK, 김정민 등의 음반에 세션으로 참가했고 영화 '똥개' '튜브' 등 많은 OST음반에 하모니카 선율을 곁들였다.

"제가 가진 장애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한 일종의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음반이 나올 때까지 장애를 극복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싶진 않아요."

그는 시각 장애인 특수학교인 인천의 혜광학교에 입학하면서 음악과 처음 만났다.

7세 때부터 학교 브라스 밴드에서 북채를 잡았던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장구채를 쥐었다.

고교 졸업 후 친구 3명과 결성한 사물놀이패 '다스름'으로 '세계 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무살 무렵, 그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음악을 내던지고 학창시절 따 뒀던 안마사 자격증을 찾아들었다.

하지만 7개월 간의 악몽 같았던 삶의 끝에서 그가 발견한 희망은 결국 음악이었다.

1996년 '사물 천둥'이라는 이름의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연주를 듣게 된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 세상의 소리 같지 않았다.

하모니카에 영혼이 담긴 듯 대가의 소리는 자유로웠다.

이때부터 오로지 음반을 통해 귀로 들리는 소리를 따라 하모니카를 익혔다.

CD음반을 1천 회가 넘게 듣고 독학으로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고 또 불었다.

"그 정도로 몰두하지 않았다면 하모니카 음악이 제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거에요. 음악적인 삶도 불가능했겠죠."

전제덕에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모니카를 독자적인 연주의 영역에 올려놨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는 지난해 내놓은 1집 '전제덕'을 통해 하모니카의 표현 영역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를 보여주었다.

"음악가들만 듣는 음악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일반 대중들에게 하모니카가 흡수될 수 있도록 친숙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가 말하는 하모니카의 매력은 무엇일까.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 연주하는 악기는 하모니카가 유일하죠. 아무리 속주를 해도 물 흐르듯 연주하긴 힘들지만 음색의 근원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서려 있어요." 그의 음악이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화려하고 역동적이면서도 바닥에 슬픔의 정서가 흐르는 이유다.

재즈가 가진 여백이 좋다는 그는 스윙· 비밥 등 정통 재즈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스탠더드 재즈를 기초로 다른 장르의 음악에 제 나름의 해석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20년은 더 노력해야겠죠." 전제덕은 내달 1일 오후 6시 30분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와 무대에 오른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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