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피나 바우쉬

입력 2005-04-19 11:50:19

국내서도 상연됐던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 '그녀에게'는 무용 공연을 보러 온 관객석의 두 남자를 비추면서 시작된다. 무대에서는 앞 못 보는 두 여자가 고통에 찬 몸짓을 하고 있고, 한 남자는 그녀들이 부딪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주변의 의자와 탁자를 옮기고 있다. 두 무용수 중 주름잡힌 얼굴에, 춤사위 하나하나가 그토록 아름답고 철학적일 수 없는 무용수가 바로 이 시대 최고의 안무가로 불리는 피나 바우쉬다. 이 영화는 바로 그녀의 작품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로 시작되고 끝난다.

◇ 독일 출신의 피나 바우쉬는 무용과 연극을 넘나드는 탄츠테아터라는 장르를 개척한, 세계 무용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1만 송이의 카네이션이 무대를 뒤덮은 작품 '카네이션'이 그러하듯 파격적인 해프닝과 상상력, 리얼리티가 절묘하게 배합된 작품은 한눈에 '피나 바우쉬 표(標)'임을 알게 만든다.

◇ 피나 바우쉬를 세계적 대가로 우뚝 서게 한 것은 뭐니 해도 특정 도시를 모티브로 창작하는 '세계 도시-국가 시리즈'다. 1986년 로마를 소재로 한 '빅토르'를 비롯 '마드리드'(스페인'1991), '비극'(오스트리아'1994), '마주르카'(포르투갈'1998) 등에 이어 열세번째 시리즈로 한국 소재 작품이 탄생되었다. '유리창 닦는 사람'(홍콩'1997), '천지'(일본'2004)에 이어 아시아 소재로는 세번째다. 이를 위해 단원들은 지난해 한국의 곳곳을 다니며 한국의 미(美)와 (魂)을 채집했다.

◇ 지난 17일 독일 중서부의 부퍼탈 시 샤유슈필하우스에서 프리뷰로 선보인 '신작(新作) 2005'. 좌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김장과 등목 모습 등 이색적인 동양의 정서와 폭풍같은 강렬함, 에로틱한 열정, 첨단 도시의 피로감 등이 다이내믹하게 어우러진 무대에 다섯차례의 커튼콜과 전원 기립박수로 호응했다.

◇ 도시-국가 시리즈는 초연에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 무용단의 주요 레퍼터리로서 지속적으로 공연된다. 갓 태어난 이번 작품에도 곧 멋진 이름이 붙여지고, 각종 해외페스티벌과 순회 공연 등으로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도 불구, 아직도 국제 사회에서는 너무 먼 이름인 '코리아'가 피나 바우쉬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 새로운 이미지로 가닿게 된다는 게 반갑기 그지없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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