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영어 학원 관계자들을 만나면 가장 흔히 듣는 말이 문법 영어에 대한 것이다. 중'고교에 진학해 내신 성적이나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방식이니 점수 영어, 시험 영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학원 관계자들은 초등학교 4, 5학년까지 원어민 강사와 함께 열심히 회화 공부를 해 어느 정도 말하기와 듣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6학년만 되면 중학교 진학에 대비해 문법 영어를 중심으로 하는 학원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문법이나 단어 암기에 매달려 그 동안 쌓은 실력을 고스란히 허사로 돌린다는 것이다. 현실과 문제점, 바람직한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현실-적응이냐 U턴이냐
회화 위주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문법 위주 학원으로 옮기지만 받아들이는 형태는 다양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다수는 중학교 진학 후에 대한 부모의 걱정을 받아들여 현실에 순응한다. 그러면서 문법과 독해, 단어 암기에 초점을 맞추느라 지난 수 년 동안 배웠던 회화는 등한히 하게 된다. 방학을 이용해 해외 어학연수나 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공부의 중심은 책에 맞춰진다. 일찌감치 지필 평가 중심의 중'고교 교육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다.
공부 방법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영어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도 적잖다. 초등 저학년 때 역할극이나 놀이 등을 통해 즐겁게 하던 영어 공부가 갑자기 부담으로 다가오면 힘들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마지못해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예전에 다니던 회화 중심 학원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상당수다. 한 학원장은 "문법 영어 학원으로 아이를 옮겼던 학부모가 6개월이나 1년 뒤에 상담을 원하고 다시 등록하는 사례가 자주 있다"며 "영어에 대한 재미는 싹 잊어버리고 회화 실력은 실력대로 떨어진 상태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공백기 이상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문제점-무의미한 구분
엄밀히 말하자면 회화 영어니 문법 영어니 하는 구분은 대단히 편의적이다. 어떤 학원이든 한쪽에만 치우쳐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부 역시 한쪽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녀를 문법 위주 학원으로 옮기는 학부모들조차 "회화 공부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이라고 인정한다고 한다.
회화 영어와 문법 영어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회화를 잘 하려면 문법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고, 문법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회화 실력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문법 영어로 전환한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문법의 규칙과 문장 구조, 어휘 등을 익히라고만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역시 강의나 평가에만 치중해 문법의 다양한 활용이나 말하기 등에 소홀하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문법이나 독해도 공부하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관건은 문장 구조에 얼마나 익숙해졌느냐, 스토리북이나 동화책 등은 어느 정도 읽었느냐 등과 같이 회화 공부를 하면서 쌓은 기초가 문법 중심으로 공부를 전환하는데 충분하냐는 것이다. 회화 공부를 꾸준히 단계적으로 해 왔다면 문법 공부의 필요성은 절로 느껴질 수 있다.
▲선택-내 아이의 수준과 능력은
아무리 합리적인 학부모라고 해도 자녀의 문제만큼은 주위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들리면 흔들리게 마련이다. 영어 공부에 대해서는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공부 방법 전환이나 학원 선택 등도 자녀의 의견이나 실력 등에 대한 판단 없이 주변의 이야기에 이끌려 다니기 쉽다. 이렇게 되면 자녀의 성취도나 학습 태도는 그리 만족스럽게 나타나지 않는다.
우선돼야 할 것은 내 아이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지, 회화 영어에 더 익숙해지고 기초를 더 쌓아야 하는지, 문법 학습으로 넘어가도 좋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다. 자녀의 바람이나 취향 등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좋다.
회화 실력은 오래 투자한다고 무조건 쌓이는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회화 영어를 해 왔는데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까지의 공부 패턴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학습 방법이 자녀에게 맞는지, 정확한 평가를 통해 적절하게 단계를 맞추고 있는지, 방법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법 영어로 전환할 경우에도 "시기가 됐으니 이제 해야 한다"며 아이를 몰아붙일 게 아니라 학습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부터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배운 영어를 한층 다양하고 정확하게 구사하기 위해 앞으로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만 이해한다면 문법 공부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문법 영어로의 전환을 꾀하지만 자녀의 수준이나 능력에 맞춰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사진은 영어 경시대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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