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있어 먼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1984년 5월 3일,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 구절을 인용한 첫 인사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국 땅에 입을 맞추고는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한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했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교회 박해시대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시성하는 시성식을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첫 방한 기간 동안 요한 바오로 2세는 14시간씩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 묘소를 참배해 위로했고, 국립 소록도 병원을 찾아가 한센병 환자들을 만남으로써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명동성당에 미사 집전을 하러 가는 길에 정신이상자가 차량 행렬 앞에 뛰어들어 장난감 딱총을 겨누는 일이 발생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첫 번째 방문에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 이산가족의 재결합 등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이를 되새기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5년 5개월 만인 1989년 10월,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주재하기 위해 2차 방한했다.
65만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한 성체대회 기념 장엄미사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라졌으나 아직은 평화와 정의 속에 하나가 될 수 없는 세계의 상징적 존재가 한민족"이라며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했다.
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대학생들이 전달한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으며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을 고무하고 민주화 열망을 수용한 일도 유명하다.
이렇듯 한국 교회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은 방한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교황은 역사적인 첫 방한에 앞서 당시 로마에서 공부하고 있던 장익 신부(현 춘천교구장)에게 40여 차례에 걸쳐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또 강론에서 율곡, 퇴계, 이차돈, 공자의 명언을 자주 인용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학과 동양철학에 대한 서적들을 방한 1년 전부터 탐독했던 덕분이었다.
교황의 두 차례 방한은 한국교회의 복음화율이 급속도로 성장하는데 일조했다.
교황 재위 기간 한국 가톨릭 신자는 3배나 증가해 현재 400만 신자를 넘어섰다고 천주교 측은 밝히고 있다.
'북녘 형제와 연대'를 강조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대홍수로 북한에 식량 부족사태가 발생하자 구호식량과 의약품·의료장비를 전달, 국내외에 북한 식량 및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첫 방한에서 한국인에게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러분 모두가 사랑하는 조국, 그렇지만 한 세대가 넘도록 아직도 분단의 비극을 안고 있는 조국이 전쟁으로써가 아니라 대화와 상호 신뢰, 그리고 따뜻한 형제애로 다시금 한 가족으로 통일되기를, 그래서 불신과 증오가 만연한 이 세상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기를 기원합니다.
"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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