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체격 제한

입력 2005-04-13 11:43:40

산골 출신 노년층 중에는 초등학교를 또래보다 한두 해 늦게 들어간 이가 있다. 호적 문제나 집안 사정 등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키 때문에 입학을 미룬 경우도 있다. 10리 밖 읍내 학교를 다니려면 산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데 '아직 저 키로는 냇물을 건널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막연한 판단이 입학을 늦춘 이유였다. 그렇다고 한두 해 만에 키가 얼마나 컸을까. 일찍 들어갔건 늦게 입학했건 장마철 냇물이 불어나면 모두 학교 가기를 포기하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 체구가 평균치에 못 미치는 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과 불리함은 적잖다. 키 1cm 때문에 각종 선발시험에 낙방하거나 작은 체구 때문에 운동선수의 꿈은 아예 접어야 했다. 그래서 왜소한 체구로 세계를 제패한 선수의 신체 조건 극복 노력엔 찬사가 뒤따른다. 인간 승리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선 열악한 신체 조건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을 설정, 키와 몸무게로 사회적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의 심정을 달래주기도 한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비상시엔 무력으로 상대를 진압해야 하는 경찰'소방'교정직 공무원 등에도 신체 조건에 응시 제한을 두는 건 평등권 침해라고 밝혔다. 직종의 특성상 육체적 능력이 요구되지만 키와 몸무게 기준이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과학적인 근거에 의하여 설정된 게 아니라며 해당 기관장에게 관련 규정 개선을 권고했다.

◇ 인권위 결정에 대해 해당 기관은 당연히 반발한다. 신체 접촉이 많은 만큼 일정한 신체 요건의 유지는 필수라는 것이다. 경찰의 경우 범죄자에게 피습당할 위험이 상존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권 침해라는 것은 비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키가 작아도 날쌔고 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체격보다 체력이 중요하므로 체격 제한 대신 체력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인권위 결정을 찬성하는 이도 많다.

◇ 인권위 결정에 대한 찬반 양론이 모두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결정의 의미는 막연하고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다. 키 몇 cm, 몸무게 몇 kg이 아니면 업무 능력이 없다고 판단, 잠재능력을 무시하지 말라는 권고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선입견 벗기가 요구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권위의 결정은 되새겨볼 만하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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