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프(Garp)

입력 2005-04-12 11:24:21

페미니스트 엄마와 오이디푸스 아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던 제니 필즈와 그녀의 아들 가프에 대한 실화다. 남녀간의 애정 행위를 극단적으로 혐오했던 제니의 사랑 불능증과 가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혼은 반대했으나 자식을 간절히 원했던 제니는 야전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뇌손상으로 지속적인 발기 상태를 보이는 병사와 일방적인 성관계를 가진 후 아기를 갖는다. 비행사였던 그 군인은 사망하고, 계획대로 남편 없이 아들을 낳아 자기 방식대로 키운다. 독특하고 강한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자란 가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영화에서 펼쳐진다.

결손 가정의 가프는 비행사였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비행사 놀이를 하며 날고 싶은 꿈을 품고 자란다. 가프에게 아버지는 거의 마술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아버지 없이 자란 가프는 오이디푸스적 삼자관계(아버지-어머니-아들)를 경험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식을 편들거나, 벌주는 막강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다. 여성만이 여성을 탄생시킬 수 있듯, 남성만이 남성을 탄생시킬 수 있어서, 편모 밑에 자란 아들의 성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 소아 정신의학자 게멜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자서전 '섹스의 이단자'라는 책을 출간해 1960년대 미국 페미니즘의 지도자로 떠오른 제니는 성전환증 환자, 강간당한 후 혀를 잘린 소녀를 동조해 자기의 혀를 자르는 급진 페미니스트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인습 타파의 삶을 산다.

장성한 가프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고 작가로서 성공한다. 그러나 가프는 어머니가 금기시하던 행동을 한다. 아이들의 유모와 자유연애를 즐기고, 어머니가 짐승 같은 욕망의 운동이라고 금지하던 레슬링을 즐기고, 페미니스트들을 혐오한다. 결국, 가프는 급진 페미니스트의 미움을 사서, 레슬링 체육관에서 한 페미니스트가 쏜 총탄에 맞아 절명하고 만다.

제니가 보이는 사랑 불능증은 사랑이라는 문제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성 간의 사랑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 사랑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 욕구는 있지만 뭔가가 겁이 나서 억누르는 사람, 끝없이 사랑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 사랑은 하지만 섹스는 심하게 억압하는 사람 등 여러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신의학자 컨버그는 사랑 불능증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상대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기 힘든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둘째는 경계성 성격의 소유자로 정신구조가 너무 약해서 사랑이 가지는 퇴행적 요소를 견디기 어려워 사랑하기 어렵다고 한다. 셋째 신경증적인 성격은 오이디푸스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자기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애착이 너무 강해서 사랑과 섹스를 혼합하지 못해 사랑을 하지 못한다.

제니는 어떤 경우일까. 그녀의 사랑 불능증의 영향은 아버지를 그리는 가프의 공상과 삶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다. 이혼율의 급증과 미혼모의 증가로 결손 가정이 늘어나면서, 민족과 문화를 넘어 보편적인 현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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