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서울여성영화제'(8~15일)의 화제작 중 하나인 '끔찍하게 정상적인'은 대단히 독특한 작품이다. 셀레스타 데이비스(32'미국) 감독 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로 5살 때 자신과 언니를 성추행한 남자를 25년 뒤에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시달리던 두 자매와 어머니가 갈등 끝에 가해자를 찾아갔을 때 남자는 끔찍할 만큼 정상적인 태도로 이들을 만난다. 끝까지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했지만, 데이비스 감독은 오랜 상처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대개 성범죄 피해자들은 어떤 이유로든 다시 가해자를 만나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정신과 의사들도 정신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데이비스 자매와 어머니는 스스로 가해자를 찾아나섰다. 숨기고만 싶었던 끔찍한 상처로부터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결연하게 마주봄으로써 마침내 고통을 극복한 것이다.
◇ 그러나 자신의 가시(상처)를 마주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30명꼴로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상처로부터 영원히 회피하고 싶은 심리가 스스로를 극단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 서울의 유명 과학고 학생이 투신자살했다. 총학생회장에다 교내 록밴드에서 드럼을 쳤고, 아역 탤런트 활동도 했던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수학과 과학과목의 탁월한 성적으로 국제천문올림피아드 출전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한다. 공부도, 취미활동에도 두루 뛰어난 21세기형 모범생이다. 그런데 왜 목숨을 끊었나. 한국과학기술원 조기 입학 실패와 최근의 성적 부진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 결국 학업 스트레스가 살아갈 날이 모래알처럼 많은 한 소년에게 인생을 온통 잿빛으로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에요', 아무리 외쳐도 이 사회가 성적 지상주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피해자가 계속될 수 있음을 재확인케 한다. 일류 대학 입학이 지상과제가 된 이 사회에서 이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 한 가지를 반드시 훈련시켜야 할 것 같다. 무언가로 힘겨울 때 그것을 용기있게 마주보는 법, 그리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을.
전경옥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