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리영 리의 '선물'

입력 2005-04-08 10:47:15

'내 손바닥에 있는 쇠가시를 빼내기 위해/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셨다//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빼내셨다// 가시를 뺀 다음 이를 들어올릴 때의 내 모습에 주의하라/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때 나는 쇳조각을/ 내 두 손가락 사이에 쥐고서/ '나를 파묻을 쇳조각'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작은 암살자'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내 가슴 깊이 파고들어갈 광물질'이라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한 내 상처를 치켜들고 '죽음이 이곳을 방문했었다'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 간직한 것을 받았을 때/ 아이가 그렇게 하듯이/ 아버지에게 뽀뽀해 드렸을 뿐'(리영 리의 시 '선물' 중에서)

오늘날의 시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가족과 문화와 직장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에 압도된 애처로운 사람 또는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 아니면 착한 패배자로 등장하기 쉬운, 그리하여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용서하는 소영웅으로 묘사하는 정도이다.

반면 리영 리의 시에 등장하는 '어린 한 소년의 손바닥에 은빛 눈물과 자그마한 불길을 선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 그의 아버지는 모택동의 주치의였고 수카르노의 의료고문이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감옥에 구금되었던 정치범이었다가 탈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작은 마을로 망명한, 분노와 신비로움과 연민을 가득 지녔던 실재의 인물이었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나 미국 내 소수민족 시인들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영문학자 장경렬 교수는 머리로만 읽던 영문학 주류보다 가슴으로 읽을 수 있는 주류의 바깥쪽을 헤매다가 '섬세한 보슬비를 맞이하는 연못과도 같이 파문이 이는…' 리영 리의 시집을 발견, 번역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비주류국의 고뇌와 환희를 보다 선명하게 읽고 싶었다"며 " 리영 리와 같은 아들을 둔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전혀 안타깝거나 아쉽지 않을 겁니다…"라며 꼬리말을 달았다.

T S 엘리엇이나 릴케를 떠올리게도 한다는 리영 리의 시집은 '어두운 빛깔의 물로 채워진 우물'과도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평범한 말에 대한 애정을 다하여 퍼올리고 있다.

고희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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