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패션어패럴밸리 재검토' 발표가 있자 지역 섬유인들은 흥분했다.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겨우 몇 년 밀어줘 놓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재를 뿌리는 격"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반대편 목소리도 제법 톤이 높아졌다. 대구 섬유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두 갈래 목소리 속에서 사업추진주체인 대구시는 고민하고 있다. 지금 어떤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구가 살 길?
패션·봉제업계는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도로 등 기본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인데 지금 와서 타당성 운운하는 것은 만시지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한국패션센터(FCK) 최태용 이사장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원칙과 어긋나고 투자된 사업에 대한 국가적 낭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구경북봉제공업협동조합 김규만 이사장은 "지역 소재업체는 감사원의 생각과 달리 고기능성 쪽으로 많이 선회한 상태"라며 "오히려 취약한 패션, 봉제 등 다운스트림 분야를 발전시켜 섬유집산지의 기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계나 다른 섬유단체들도 현실에 맞게끔 사업 규모를 축소할 수는 있어도 제직·염색에 편중된 지역섬유산업을 패션·디자인 등 고부가산업으로 전환해야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사업 중단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섬유기계연구소 전두환(영남대 교수) 소장은 "제조 중심의 지역 섬유를 소프트웨어가 가미된 기획생산체계로 변모시키기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패션어패럴밸리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다. 계명대 하영석(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역에는 제직·염색 등 생산기반은 있지만 단 하나 부족한 부분이 패션 등 유통이다"라며 "부가가치를 높이는 유통기반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시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윤성광 이사장은 "세계적인 섬유산업 추세가 토털패션으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지역 섬유산업도 직물·패션과 접목된다면 회생가능성이 있다"라며 사업추진을 역설했다.
◆현실을 보자!
패션어패럴밸리 사업이 정치논리에서 시작돼 출발부터 삐끗한 사업이며, 현실을 감안해서 사업내용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러한 주장은 패션어패럴밸리의 실패가 과거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중앙정계 진출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된 데서 기인됐다는 해석과 연결되고 있다. 이들은 늦기 전에 사업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남대 김승진(섬유패션학부) 교수는 "대구시가 계속 관 주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 패션·봉제 업체들이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한 사업추진이 이뤄진다면 밀라노프로젝트 전체 사업의 '선택과 집중' 논리에서도 어긋난다"라며 "감사원의 지적은 시의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면서 동대문 패션가와도 거래 중인 성서공단 한 섬유회사 대표는 "서울지역 업체들도 봉제작업은 중국에서 하는 마당에 대구에 거대 봉제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며 "진작부터 많은 제직업체 대표들이 접어야 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산업 관계자들의 비난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계업체 대표는 "지금 대구의 주력산업이 무엇인지 이제 대구 사람들이 깨우쳐야 한다"라며 "기계금속업계의 생산·순익 비중이 섬유를 따돌린 지 오래됐는데도 아직도 대구시는 봉무동 알짜배기 공영개발용지를 성장력 잠식상태인 섬유산업에 사용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기계업체 대표는 "섬유는 사양산업이고 기계금속·전자산업이 성장산업이라는 말도 맞지 않지만 무엇보다 행정기관이 나서서 특정 산업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려는 발상을 접어야 한다"며 "패션어패럴밸리도 원래 명칭이 봉무지방산업단지인 만큼 섬유든, 기계금속이든 도심에 적합한 우량기업이 집적한 도시형 첨단 공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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