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바칩니다"…배영수 눈물의 완봉승

입력 2005-04-04 11:23:53

삼성 라이온즈 투수 배영수에게 2일 롯데와의 개막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로 개막전 무사사구 완봉승(4대0)을 거뒀고 초임 선동열 감독에게 데뷔전 승리를 선물했다. 대구 시민야구장을 가득메운 1만2천 명의 팬들앞에서 대구가 낳은 진정한 스타임을 한껏 과시했고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슬픈 날이기도 했다.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김태순·향년 80세)와 눈물의 이별을 했기 때문. 개막전 1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 손자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직접 운동장을 찾아올 정도로 건강했던 할머니가 이틀 뒤인 28일 갑자기 쓰러지며 입원했다. 하지만 개막전 선발을 통보받은 배영수는 할머니의 아픔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개막 등판을 앞두고 병원측으로부터 "2, 3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언질까지 받았지만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몰래 자신의 모자에 '할머니 생각'이란 문구를 새긴 것으로 간절함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던졌다. 슬로 스타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매 시즌 초반 부진을 보였던 배영수지만 이날만큼은 사사구 하나 없는 깔끔한 피칭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완봉승 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배영수는 그러나 곧바로 할머니가 누워있는 경북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의식이 없는 할머니 옆에서 누나인 배현정씨와 함께 기적을 바랐지만 할머니는 대한민국 최고 투수의 반열에 오른 손자를 뒤로한 채 이날 밤 숨을 거뒀다.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헤어진 뒤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키워준 어머니같은 할머니였기에 배영수의 슬픔을 배가됐다.

양일환 투수코치는 "개막전날에도 할머니 때문에 병원에 가야한다는 말만 했었다"며 "위독한 줄은 전혀 몰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3일 경기가 끝난 뒤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경북대 병원 영안실에는 선동열 감독을 비롯해 많은 동료들이 찾아와 배영수를 위로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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