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터'는 현진건의 작품으로 1925년 5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위선이 결국 비애로 드러나는 줄거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C학교의 교원 겸 기숙사 사감인 B여사는 40에 가까운 노처녀다. 그녀는 주근깨 투성이인 데다 시들고 마르고 떠서 곰팡 슨 굴비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녔으며 기숙생들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엄격하고 매서웠다.
그런 B사감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숙생에게 온 남학생들의 러브레터.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배달되는 러브레터를 대할 때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여학생들을 닦달한다. 그녀는 사내란 믿지 못할 마귀이며 연애가 자유라는 것도 마귀의 소리라고 억지를 늘어 놓으며 하루종일 학생들을 괴롭힌다. 또 남자들이 기숙사로 면회오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해 가족마저도 남자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아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교장이 나서 B사감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올해 가을부터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속살속살하는 말과 웃음소리가 한밤중 기숙사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계속 이런 일이 있자, 어느 날 밤 세 학생이 소리를 따라 갔다가 사감실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 B사감의 방에는 여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B사감이 혼자 연애하는 연인들의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혹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호감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욕을 해대거나 싫어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특히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 그런 경향은 더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2. 나는 남의 편지나 일기를 훔쳐 읽은 적이 있는가? 혹은 부모님이 내 일기장을 몰래 읽고 나무라는 경우가 있었는가? 부모님이 내 일기장을 몰래 읽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런 부모님에 대한 내 태도는 어땠는가?
3. 내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고 이야기할 사람이 내게는 있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4. 욕망이나 본능에 충실한 인간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이런 인간의 본능을 흉하다고 욕할 수 있을까?
▲콤플렉스와 자기 위선
B사감은 콤플렉스를 가진 전형적인 인물이다. 남자의 사랑을 누구보다 갈구하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한 번의 연애경험도 가지지 못해 마음 깊이 상처를 갖고 있다. 하지만, B사감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대신 열등감의 표출로 러브레터를 받는 여학생들을 못살게 군다든가 남자의 면회는 무조건 허락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한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반어적'이다. 이성을 좋아하지만, 이성의 관심을 얻지 못해 오히려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열등한 요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때는 자신이 지닌 정신적'신체적인 열등 요소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자기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너무 강한 콤플렉스는 성격을 변화시키고 우울증 등 병적 증상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B사감의 콤플렉스와 이를 감추기 위한 자기 위선을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그녀의 이중성과 아픔을 더욱 절절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본능의 억제
본능이라는 것은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생리적'생물적 욕구 또한 일종의 본능의 개념에 속한다. 자기보존의 본능과 종족보존의 본능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작품 속에서 작가는 아무리 권위적인 인간이라도 숨겨진 본능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B사감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사랑에 대한 열망은 숨길 수 없는 본능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
사람들은 흔히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추한 것으로 여기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본능을 억제하기에 급급하다. 특히 조선시대 유교의 전통 아래서는 이런 본능을 억제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 본능을 드러내는 것은 인격수양이 덜 된 것으로 여겼던 것.
하지만 그토록 대쪽같던 벽계수도 황진이의 매력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B사감이 사랑을 갈구하는 것 또한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런 욕망이다. B사감이 아무리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학생들을 다그쳤어도 본능을 거스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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