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이야기

입력 2005-04-01 11:21:03

이선복 지음/뿌리와 이파리 펴냄

단군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아쉽지만, 단군이란 분이 정말로 4천300년 전에 이 땅에 살며 나라를 만들어 수많은 백성을 다스렸음을 말해주는 고고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인은 흔히 알고 있듯 동굴에 사는 힘세고 용감한 사람이었을까? 할리우드의 자본이 만든 낭만적 상상력의 거품을 빼면, 현실에서의 인간은 맹수에게 걸핏하면 잡아먹히던 불쌍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사람들이 동굴에서 일 년 내내 살았던 시기는 없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과 같은 저명한 동굴 유적도 주거지가 아니라 가끔 종교적'사회적 목적의 집단적 모임이 열렸던 곳일 뿐이다.

'고고학'이라고 하면 왠지 고고하고 현실과 거리가 있는 학문일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구석기 고고학자인 서울대 이선복 교수가 쓴 '고고학 이야기'를 한번쯤 읽어봄직하다.

고고학적 관심은 어려운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사람이 산 것은 언제부터이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4천300년 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임금과 단군이 한민족의 조상이라면, 단군이 다스린 백성들은 우리 조상이 틀림없는 것일까? 또 한반도에서 농경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2만여 기의 고인돌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해안을 걷다 발견한 오래된 듯한 뼈조각은 혹시 공룡의 뼈가 아닐까? 우리 동네에도 혹시 청동기 유적쯤 하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20만 년 전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에서 현대의 무차별적 문화유산 파괴행위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성과와 문화적 쟁점을 넘나들며 들려주는 시원시원한 고고학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고학 책이라고 해서 책을 펴면 연대기 순으로 딱딱한 지식이 나열된 것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황금의 손이 빚어낸 일본 구석기 유적 날조 사건', '원시인이 공룡과 싸웠다?', '그 많던 유적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두 발로 걷는 이유를 아는 데만 500년이 걸렸다' 등 일반인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흥미 위주의 결코 가벼운 내용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세계적인 구석기 고고학자로 이름을 떨친 데다, 최근엔 고속철도 경주 통과 및 경주 경마장 건설을 막은 인물이다.

말이 나온 김에 경주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저자는 "경주시민의 재산권은 보장되어야 하지만, 재산권 보장이 문화유산의 무차별적 파괴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며, 산과 들과 개울의 모습 그 자체에 신라 천년의 고대사가 숨 쉬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경주를 세계 10대 역사도시의 하나로 선정한 사실을 굳이 들어 말하지 않더라도, 경주는 우리의 자랑이자 보물덩어리이다. 그런 곳에 고속철도나 경마장을 건설하는 짓은 문화파괴, 역사파괴에 다름이 아니다. 경주라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 아니 인류 전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주요 유적과 유물에 얽힌 에피소드와 뒷얘기들, 즉 고고학의 재미와 낭만을 풀어내는 입담에 빠져들다가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임시이전 소동이나 고속철도 경주 통과 및 경마장 건설 등 작금의 무차별적 문화재 파괴 문제를 짚어본다는 것이다.

또 선사시대 한반도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그려내는 한편, 엄밀한 고고학적 지식으로 근거 없는 '정설'과 '상식'들을 통렬하게 뒤집는 등 독자 누구나 고고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담겨 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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