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시 한 병원에서 10대 가짜 의사 사건이 발생, 해외 토픽에 올랐다. 병원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17세의 고교생은 병원 근무 교대 시간대에 전화로 이 병원 무선 호출기에 접속, 간호사에게 약을 처방하는 등 간단한 의료 처치를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소동이 빚어졌다. 이 10대는 의사가 너무 되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다고 말했다.
◇ 미국 10대의 가짜 의사 행세와는 달리 대부분의 가짜 의사들은 부에 대한 욕심에서 범죄행각에 빠져든다. 지난달 붙잡힌 자칭 '신의 손' 60대 가짜 성형의사는 그런 면에서 스케일이 컸다. 그는 국내 모 의과대학 졸업증과 영국 대학 성형외과 박사 학위증 등을 위조, 몽골 국립의과대학에 유학 가서 교수에게 금품공세를 벌여 불과 4개월만에 '진짜 박사학위'를 땄다. 몽골인들에게 성형수술을 해주고 돈도 2억 벌었다.
◇ 귀국해서는 서울 강남에 자리 잡아 '신의 손'이라는 입소문을 퍼뜨리며 가정주부서 유명 탤런트까지 그는 피라미드식 연결로 환자를 소개받아 출장 시술을 했다. 내친 김에 미국 의과대 박사 학위증 등을 위조하고 미국의 한 병원을 인수하려고 움직이던 중 쇠고랑을 찼다. 조사 결과 그는 군 의무병 복무 경험을 밑천으로 40여년간 무면허 의료행위로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과 10범이었다.
◇ 보건복지부는 의료 인력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의사'한의사'약사'치과의사 등 의료인력에 대한 전수(全數) 조사를 벌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자체 전산자료를 복지부 DB와 대조, 가짜 의료인력 적발 작업을 하고 있다. 적발된 가짜는 형사처벌과 함께 진료비 전액을 환수 당하고, 환자 본인 부담금도 되돌려줘야 한다. 그렇지만 '신의 손'처럼 보따리장수는 적발이 쉽지 않다.
◇ 지난달 박사학위 돈 거래로 전북 지방 교수'의사들이 사법처리된 데 이어 대구에서도 한 개원 의사가 돈 박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렇게 받은 박사학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호하다. 혹시나 실력 없음이 드러날까 봐 박사학위만 걸어놓고 거의 입은 열지 않는 벙어리, 불친절 의사들 때문에 '기술 좋고 값 싼' 가짜 의사가 설치는 것은 아닌지…. 가짜보다 못한 진짜는 곤란하다.
김재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