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洙 칼럼-'생명 존중' 가정과 사회를…

입력 2005-03-29 08:56:0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오래된 소설이지만 '시간의 침식'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명작이다.

독일 문호 괴테가 1774년에 발표한 이 작품에는 절대성을 추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열정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인기를 누리면서 널리 회자되고, 그 치열함만큼의 생명력도 지니게 된 건 아닐는지….

하지만 이 소설의 부작용과 폐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연인 로테에게 실연당하자 비관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살해 버린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베르테르의 '극단적인 목숨 버리기'가 비슷한 바람을 몰고 와 '모방 자살'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퍼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 꼭 2세기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도 강한 전염성이 있다'며, 이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렀다.

그 이후 이 용어는 사회학·정신의학 등에 널리 쓰였다.

지금까지 '무효화'는커녕 '날로 유효화(?)'다.

지난달 영화배우 이은주가 목을 매어 자살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그 이전보다 무려 2.5배 이상이나 늘어났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충동적인 감정 분출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이 풍조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고개를 드는 '베르테르 효과'로 보이나, 제발 일시적인 '미친 바람'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젊은이들에게는 인터넷 확산의 폐해도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방조하는 '자살 사이트'들이 생명 경시 풍조를 부채질하는가 하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부르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비전과 희망에 부풀어 있지 않은 사회는 내일이 어두울 수밖에 없으므로 근절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30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48분 만에 한 명 꼴로 자살하는 셈이다.

게다가 자살자가 해마다 5% 이상씩 늘어나 그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

이 나라가 도대체 왜 이 모양인지, 암담하기 짝이 없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최근 대구 지역의 자살자 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에는 546건, 그 이듬해는 666건이었으나 지난해는 무려 729건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의 59%나 되는 40, 50대의 자살은 생활고 비관이, 20대는 취업난 등에 따르는 우울증이 주된 원인이라니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어떤 유형이든 자살은 인륜에 반하며, 가정과 사회의 파괴 행위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당사자가 속해 있는 가정이나 조직, 나아가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도 상처와 후유증을 안겨 주게 마련이다.

어디 그뿐인가. '잘못된 자유 의지'가 남에게 '큰 짐'을 지우게 하는 경우마저 허다하다.

성서의 '시편'에는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성서의 이 같은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다.

다만 그 존엄성을 지키지 않고 훼손시키는 데 문제가 있을 따름이다.

알다시피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농경 사회를 이루고, 대가족제를 유지하면서 존귀한 생명과 가족 간의 긴밀한 유대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 왔다.

그러나 산업 사회로 이행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핵가족화'에 속도가 붙고, 가족 간의 소통도 뜸해지면서 그런 미덕들이 점차 사라져 삭막해지기 시작했다.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는가 하면, 불륜과 패륜이 빈발하는 가운데, 생명을 해치는 끔찍한 일들이 부쩍 늘어나게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가족제로 회귀할 수 없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적 미덕들을 회복하는 길마저 막혀 있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더 늦게 전에,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을 일으켜 세우는 길을 새롭게 열어야만 한다.

'아노미적 자살' 유도 요인들도 낱낱이 찾아내고 치유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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