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편지-토요휴업과 학부모

입력 2005-03-28 1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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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의 첫 토요휴업이 실시된 지난 26일 저녁. 우연히 찾은 한 식당에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재미있었니?" "예, 아빠. 이번에 산에 갔으니 다음에는 바다나 강으로 가요." "그래. 그런데 다음번엔 아빠가 휴가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 뒤로 아이들의 투정과 이를 나무라는 어머니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처음 실시한 토요휴업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한참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잘 됐다는 이들은 가족 단위 체험학습의 계기가 되고, 학교가 운영하는 특기'적성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학교나 공공도서관 등에서 운영하는 토요일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학생, 학부모의 요구 수준에도 맞지 않은 게 많으므로 이를 더욱 확대,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혼자 생활하고 놀기 어려운 아이들의 문제이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알아서 한다며 애써 무심한 이들도 많다.

입장이야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우려스런 것은 학교에 큰 기대를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주5일 수업제의 취지가 무색하든 말든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을 맡아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학생,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요한 재원 확보도 돼 있지 않으니 더욱 어려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한두 번이야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도 가고, 야외 체험학습도 가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나 준비가 가능한 가정이 아니라면 차라리 돈이 좀 들더라도 실속(?)을 찾는 쪽을 택하게 된다. 우리보다 몇 년 일찍 주5일 수업제를 실시한 일본의 경우 토'일요일 전일제 학원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사교육이라면 둘째가기를 서러워하는 우리 학부모들이나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데 도가 튼 전문가들이 풍부하니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시장이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5일 수업제가 이처럼 본질을 벗어나면 다음 단계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사교육 시장의 번성을 학교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근원은 우리 사회의 취약하기 짝이 없는 청소년 시설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박물관 등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학생들이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주5일제 수업은 학교 교육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

토요일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 ; 영어명은 Saturn)에서 따온 것으로 '씨를 뿌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토성(Saturn)에서 따왔다는 우리말에서도 토요일에 흙 토(土)자를 쓰는 걸 보면 비슷한 의미를 줄 수 있겠다.

토요 휴업은 학생들 스스로 씨를 뿌리는 기회를 갖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건강한 토양을 제공하는 건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학교에만 덮어씌우면 남는 건 공교육에 대한 불신뿐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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