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어느 곳에 한 집이 있었는데, 식구로는 아버지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어. 어머니는 일찍 죽고 다른 형제는 없고, 그러니까 달랑 이 세 식구뿐이지. 그런데 딸하고 아들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 딸은 벌써 다 커서 시집 갈 나이가 됐는데, 아들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면한 어린아이였거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일어나지를 못하고 죽게 됐어. 자식 둘을 남겨 두고 죽게 됐으니까 유산을 물려줘야 될 것 아니야? 그래서 유서를 쓰는데, 웬일인지 재산이란 재산은 모두 딸한테 물려주고, 아들한테는 딱 세 가지 물건만 물려준다고 쓰는 거야. 세 가지 물건이란 뭔고 하니, 두루마기 한 벌하고 짚신 한 켤레하고 종이 한 장이야. 딱 그 세 가지 물건만 아들한테 주고, 나머지 재산은 죄다 딸한테 물려준다는 거지. 그렇게 유서를 써 놓고는 그만 죽어버렸어.
아버지가 죽고 나자 딸은 유서에 적힌 대로 재산을 모두 차지했어. 그러고 나서 곧 시집을 갔지. 물려받은 재산을 몽땅 가지고 시집을 가니까 뭐 걱정이 있나. 넉넉하게 잘 살지.
그런데, 혼자 남은 어린 동생은 참 신세가 딱하게 됐어. 그까짓 두루마기하고 짚신하고 종이 같은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것 가지고는 밥 한 끼 사 먹을 수도 없잖아. 동생은 하릴없이 동냥을 해서 먹고살았어. 이 집에 가서 밥 한 술, 저 집에 가서 물 한 그릇, 이렇게 얻어먹으면서 겨우겨우 목숨을 잇고 살았지. 그러다가 한 해 두 해 지나서 나이를 먹으니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어. 그렇게 참 어렵사리 산단 말이지.
그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관가에다 송사를 냈어. 뉘 집 아들이 이렇게 거지꼴로 살고 있으니 딸이 가진 재산을 좀 나누어주게 하시오, 이렇게 재판을 걸었단 말이지. 그런데 유서가 시퍼렇게 남아있으니까 고을 원님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아버지 손으로 틀림없이 그렇게 재산을 물려준다고 써 놨으니까, 그걸 돌이킬 수는 없단 말이지. 그래서 원님이 갈려올 때마다 송사를 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그러다가 한 해는 아주 똑똑하고 슬기롭다고 소문난 원님이 새로 갈려왔어. 이 원님이 앞뒤 사정을 다 듣고 유서까지 꼼꼼하게 살피더니, 떡 하니 판결을 내리는데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렇게 판결을 내리네.
"오누이는 잘 듣거라. 너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아들한테 두루마기와 짚신과 종이를 남긴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송사를 벌이라는 뜻이니라. 종이에 사연을 써 가지고 두루마기를 입고 짚신을 신고 관가에 가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희 아버지가 죽을 무렵에는 아들이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재산을 지키기 어려울 것을 알고 우선은 딸한테 재산을 다 물려준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재산을 지킬 만한 나이가 되면 관가에 알려 재산을 찾으라고 송사에 필요한 물건을 물려준 것이니라. 그러니, 아버지 뜻대로 오누이가 재산을 알맞게 나누어 갖는 게 어떻겠느냐?"
들어보니 마디마디 옳은 말이거든. 그래서 누나도 마음을 고쳐먹고 재산을 뚝 잘라 동생한테 나누어 줬대.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어떻게 되긴. 둘이서 사이좋게 오래오래 잘 살았지.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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