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만 골탕먹이는 1회용품 신고제

입력 2005-03-28 10:24:13

서구 평리동에서 ㅇ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모(35)씨는 며칠 전 대구지역을 휩쓴 4인조 봉파라치(본지 3월 18일 보도)의 함정에 걸려 과태료를 물게 됐다.

박씨는 지난 3일 오후 1시쯤 가게에 찾아온 손님에게 1천 원짜리 황도통조림 3개를 검은 봉지에 담아줬고 봉투값을 받지 않은 채 현금영수증을 떼 줬다.

손님을 가장한 봉파라치들은 숨겨둔 몰래카메라로 이런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 서구청에 신고했다.

박씨는 "너무 분해 알아보니까 그날에만 시장 상인 39명이 같은 봉파라치에게 당했다"며 "봉투값 50원 안 받고 과태료 몇십만 원을 물게 됐는데 요즘같이 한푼벌이도 힘든 서민들에게는 너무 큰 돈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03년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환경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서민들을 울상짓게 하고 있다.

일부 얌체 봉파라치들이 영세 시장·가게만 돌면서 마구잡이로 현장을 찍어가 영세상인들에게 거액의 과태료를 안겨주고 있기 때문.

박씨는 "1천 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1만 원 지폐를 건네는 손님에게 일일이 8천990원을 거슬러주는 것이 동네 가게에서 가능하겠느냐"며 "행정당국이 제도 시행 후 봉투값을 돌려받기 위해 소비자들이 찾아온다고 홍보했지만, 여태껏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푸념했다.

박씨는 실제로 봉투값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곧 동네에서 '돈밖에 모르는 구멍가게 주인'으로 소문이 났고, '다음부터 이 가게 오지 않겠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

대형 할인점에서 8평 정도의 공간을 빌려 일주일간 청바지를 판매했던 한 상인은 중국에서 수입할 때 같이 딸려온 포장봉투가 '1회용 봉투'로 신고돼 벌금을 물게 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지만, 그는 구청에 사실 확인을 의뢰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행여 사실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대형 할인점 전체 평수를 기준으로 한 최다 과태료 300만원을 내야 할 형편이기 때문.

또 다른 상인은 장사가 안 돼 가게를 내놓은 상태에서 과태료 30만 원을 내게 되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상인은 "아무리 봉파라치라고 해도 먹고살기 힘든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서야 되겠느냐"면서 "상인들에게 항변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곧이곧대로 과태료를 남발하는 구청도 너무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영수증에 단지 '봉투값 포함'이라고 명시만 되면 물건값을 10~50원 내려 푼돈 거래를 줄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당국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을 비난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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