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이 있다면 아빠와 함께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22일 밤 10시쯤 달서구의 빈 가게에 숨어살던 아영(가명·10·여·초교4년)·호영(가명·9·초교3년) 남매가 경찰관들에게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 19일 집을 나와 인근에 휴업 중인 가게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노숙'을 시작한 지 4일째였다. 빈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이상하게 여긴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이들을 찾아낸 것이다. 가게에 남아있던 동전으로 초코파이 한 통을 사먹고 밤에는 생라면에 온수를 부어 끼니를 때웠다는 아이들은 얼핏 보기에도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남매의 '짧은 가출'은 흔들리는 가정과 사회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둘은 지난해 7월 아버지(42)마저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이복언니(13·중1)와 함께 살아왔다. 남매를 낳아준 어머니(41)는 4년 전 재혼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난 뒤 일찌감치 발길을 끊었다.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50여만 원을 받았다는 세 남매는 학교와 이웃의 도움으로 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매는 이복언니와 감정싸움을 벌이다 가출을 감행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통제하고 가끔 벌까지 주는 이복언니가 자신들을 괴롭힌다는 게 이유였다. 있어야 할 '가장'이 없다보니 아이들끼리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남매를 보살펴 왔다는 한 이웃은 "이복언니가 가출한 새 엄마로부터 받았던 핍박과 설움을 자기도 모르게 두 남매에게 풀었던 것 같다"며 "알고보면 맏이도 피해자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아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며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화목이 깨져버린 가정이 이들을 거리로 내몬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23일 다시 등교한 남매는 선생님에게 '1년만 참으면 아빠를 만날 수 있으니 언니와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둘은 끝내 이복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아 이날 오후 복지단체에서 운영하는 임시보호시설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달서경찰서 채승기 강력팀장은 "돕고 기대며 살아야 할 삼 남매가 서로 미워하다 가출과 노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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