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달성공단

입력 2005-03-23 16:29:43

전형적 과수원 마을서 지역경제 버팀목 변신

달성군 논공읍 본리1·2리 논공·소두벌 마을(사진). 3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50~60농가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1970년대 중반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한다. 76년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왕복 2차로 구마고속도가 착공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구마고속도의 통과를 계기로 79년 지방공단으로 지정되고 5년만인 83년 본리 1리 '논공'마을과 본리 2리 '소두벌'마을을 합친 자리 120여 만평에 지금의 달성공단이 들어선 것.

공단 이름도 처음에는 자연부락명을 본 따 '논공 공단'으로 불리었으나 1991년 '달성지방공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최창림(64·논공읍 노이리) 논공읍 번영회장은 "공단이 들어서기전 논공부락은 산골짜기에 위치해 주로 사과·포도 등 과수원 위주의 밭농사를 짓는 조용한 농촌이었다"며 "5년만에 농촌 마을이 대규모 공업단지로 변했으니까 천지가 개벽한 셈"이라고 말했다.

달성군 윤창기 허가민원과장(당시 보상 담당)은 " 당시 공단 편입부지의 보상가가 평당 2천500~3천 원으로 모두 50억 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위치에 따라 평당 200~300만 원으로 1천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라며 "용지보상금을 모두 합쳐도 큰 공장 하나도 살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는 듯했다.

당시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달성공단 입구에 논공읍 남동 '사부랭이'마을에 마련된 1백여 가구의 이주단지로 생활터전을 옮겨 살고 있다.

달성공단 관리사무소 이진목 사무국장은 "처음에 70~80개이던 입주업체가 공단 조성 23년째를 맞아 지금은 320여 업체로 4배이상 늘었고, 연간 생산실적 3조 원, 지난해 수출실적이 10억달러 등 지역 경제의 버팀목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달성공단은 최근 구지 달성2차산업단지의 성공적 분양에다 현풍 대구테크노폴리스 및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이 들어서게 되면 논공-현풍-구지로 이어진 산업벨트화와 국토 동남권 R&D(연구·개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사진: 1970년대 논공면의 자연부락 '소두벌'(사진 앞쪽)과 현재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달성1차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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