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

입력 2005-03-23 08:56:43

제복에 완장, 긴 장화에 창 모자, 견장…

독일 나치의 대표적인 패션이다. 여기에 가슴 큰 금발 여인이 등장하고, 채찍에 갖가지 잔혹 살인 도구가 나오면 그 유명한 잔혹 성 영화 '일사'가 된다.

'일사, 나치 친위대의 색녀'(Ilsa, She wolf of the SS.1974)는 2차 대전 중 독일 포로수용소의 여의사 일사가 포로들을 생체실험하고 밤마다 성 노리개로 유린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총 4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는 물론 '어둠의 통로'를 통해 암암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89년에야 비디오로 출시됐는데, 원본의 잔혹성과 성적 표현은 완전히 가위질 당하는 수난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DVD로 출시됐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DVD로 출시됐는데 10여분 넘게 잘려나가 원본의 몰골을 가늠키 어렵다.

이 영화가 그렇게 주목을 끈 것은 '잔혹'과 '성'의 이중주 때문이다. 1편은 포로들에게 자행되는 끔찍한 생체 실험이 등장하는데, '마루타'를 능가한다. 고문당한 몸으로 다시 섹스를 강요받는데, 그 끔찍함이 눈을 뜨고 보기 어렵다. 또 남자 포로든, 여감방의 죄수든 가리지 않는다.

일사는 성은 매우 모호하다. 외모는 '왕가슴'과 금발, 푸른 눈동자를 가졌지만, '하는 짓'은 어떤 근육질의 남성보다 더 난폭하다. 간혹 여 죄수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녀는 레즈비언, 마조히스트, 새디스트 등 갖가지 성의 경계와 규정을 넘나든다. 그녀는 성별을 떠난, 잔혹한 '정복자'이자 '독재자'이다.

일사는 성 착취의 화신이다. 흔히 포르노 영화를 섹스플로이테이션 필름(Sexploitation film)이라고 한다. 섹스와 착취(exploitation)의 합성어다. 착취는 여러 가지 단어가 합성되기도 한다. 흑인 착취영화를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on)이라고 부른다.

섹스플로이테이션은 성을 착취하는 성애 영화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여감방'같은 영화이고,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일사'이다.

갇힌 자와 가둔 자. 갇힌 자는 힘이 없고, 탈출할 수도 없고, 자유의지마저 박탈당했다. 반면 가둔 자는 모든 힘을 가진 공권력의 분신이다.

혹자는 수많은 감방 영화를 통해 극우와 극좌의 대립을 설명하기도 한다. '일사'의 경우 가둔 자는 나치 친위대의 극우주의자를 연상시킨다. 약한 자를 경멸하며, 다른 성별을 혐오하며, '공권력의 강간'으로 그들에게 준엄한 형벌을 가한다. 제복을 입은 일사의 외모는 우익의 아이덴티티이다.

완벽한 금발, 완벽한 가슴, 완벽한 눈…그러나 그녀에게서 인간의 참 모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70년대 한국에서도 '일사'와 같은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신상옥 감독의 '여수(女囚) 407호'(1976년)이다. 일본 고등계 형사의 꾐에 빠져 독립군 소탕에 이용된 여죄수의 분노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곧장 화제를 모았고, 속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죄수', '여감방'은 그 단어로 이미 자극적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여죄수에게 가하는 남자 간수들의 성적접촉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여죄수를 벗겨 세웠는데, 창살이 중요부분을 가리도록 한 장면은 상당히 안타깝고(?), 또한 혀를 내 두를 정도로 교묘했다.

이 때는 '70인의 여죄수' 등 여자의 성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많았다. 70년대 가공할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영화에 투영된 듯하다.

섹스플로이테이션은 우익의 비이성적 강박을 비유하기도 한다. 자신의 뜻을 정당화시키고, 성취하기 위해 온갖 만행적 테러를 일삼는, 그래서 그 비이성적인 테러마저도 '자신들의 뜻'으로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이용하는 강박 말이다.

어째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의 초상이 그려지지 않는가?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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